[week& cover story] 서울서 전학 온 김예은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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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랑 고구마 삶아 놨어요. 놀러 오세요."

첫날 취재가 막 끝나고 해가 떨어질 무렵 전화가 왔다. 일곱 달 전 서울에서 단월로 전학온 3학년 김예은양의 엄마 현선희(36)씨였다.

예은이는 지난해 큰 수술을 받았다. 건강 때문에 시골로 옮긴 것이지만 교육적인 이유도 있었다. 여러 학교를 돌아다닌 끝에 이 곳을 선택했다. 마침 학교 앞에 전셋집이 하나 나와 보름 만에 이사했다.

"서울 학교에서는 아침 자습시간에 한자를 억지로 쓰게 했어요. 1년 반 동안 했는데 아이가 기억하는 한자는 하나도 없었어요."

여기서는 자습 시간에 달리기를 한다. 예은이가 얻은 것은 건강이다. 서울에서는 일기에 쓸 내용이 없어 "엄마, 오늘 무슨 일 있었지?"라며 물어보던 예은이가 지금은 시키지 않아도 한 페이지 가득, 때론 두 페이지 가득 일기를 쓴다.

서울에서는 3, 4명하고만 친했지만 여기서는 전교생을 다 안다. "수술한 데 보여줘봐"라며 상처를 건드리는 아이도 없다. 이곳 친구들은 그런 것 말고도 관심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가방을 던져놓고 밖에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 놀다가 들어온 예은이는 "이게 진짜 노는 거 같아요"라고 말한다.

엄마가 학교에 전화를 걸면 누가 받든 "예은이한테 집으로 전화 좀 하라고 해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선생님이 학생을 전부 알기 때문이다.

"엄마, 현미가 뭔지 알아? 현미는 쌀눈이 남아 있는거야." 서울에서는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말한 적이 없는 예은이가 이제 학교에서 배운 얘기를 하느라 신이 난다. 할머니가 "예은이 공부 잘하니?"라고 물으면 예은이는 "저 공부 말고도 잘 하는 것 많아요"라고 답할 만큼 자신감이 생겼다.

엄마와 아빠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서울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아빠는 조용한 시골 집에 돌아오면 스트레스가 저절로 풀린단다. 서울내기 엄마는 지난 겨울, 태어나서 제일 많은 눈을 봤다.

주말이면 경기도.강원도 곳곳으로 놀러 다니느라 바쁘다. 교통체증 스트레스가 없어 주말 나들이가 부담스럽지 않다. 재정적으로도 나아졌다.

서울에서는 아이가 꼭 하고 싶어 하는 것만 시켰지만 한 달 과외비가 30만원은 들었다. 지금은 특기적성교육비 3만원이 전부다. 악기나 재료도 학교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부대 비용이 없다.

예은이네 가족은 근처에 단월초등학교 같은 대안 중학교가 생기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예은이가 졸업하기 전까지는 그런 학교가 생기지 않을까요." 예은이네 가족은 어렵게 찾은 행복을 놓치기가 싫단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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