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자로가는길>통도사 삼성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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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싸리꽃이 은모래를 뿌린 듯 지천으로 피어 있는 산자락이다.늘향불이 타오른다 하여 이름붙여진 화왕산(火旺山)자락에 핀 싸리꽃 무더기가 눈부시기만 한 것이다.
삼성암(三聖庵)은 바로 그런 산의 칠부능선쯤에 제비집처럼 자리잡고 있다.사리마을 사람들은 농삿일에 시달리다가도 밤이 돼 암자 등불을 보게 되면 작은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호젓한 산길로 들어서자 어디서 날아왔는지 꿩 한마리가 길을 안내하듯 종종종 앞서가고 있다.길라잡이 하는 꿩을 보자 갑자기다리에 힘이 솟는 것같다.동행하는 사람들도 마치 암자의 관세음보살님이 보낸 축하사절을 만난 듯한 얼굴이다.
이 부근 영산(靈山)은 고려 공민왕으로부터 청한거사(淸閑居士)라는 법호를 받았던 신돈(辛旽)의 고향이기도 하다.영산의 옥천사 사비(寺婢)아들로 태어나 동자승시절을 보낸 신돈이므로 이곳 삼성암에도 들르지 않았을까.어린 신돈은 이 산 길을 걸어올라가 삼성암 관음보살님에게 자신의 소원을 빌었을 것이다.
당시 어린 그의 눈과 가슴에 못박힌 것은 지방관리와 토호(土豪)들의 횡포가 아니었을까.이때 그의 개혁사상은 알게 모르게 싹텄을 것이 틀림없고 개경으로 나아가 왕사(王師)가 되고,환속해서는 토지개혁 관청인 전민변정도감(田民辨正都監) 의 판사(判事)가 돼 농민의 권익을 보호하려던 그가 아니었던가.
대나무 잎들이 서걱거리는 소리에 잠깐동안의 상념에서 벗어나자마자 바로 암자 한켠이 보인다.다시 암자 마당에 다다르니 다도해같은 창녕들판에 섬모양의 낮은 산과 구릉들이 노을속으로 접혀지고 있고.『우리 암자는 통도사 3대 기도처로서 관음기도 도량이지요. 기도 기운이 암자터에 향기처럼 배어있음을 느껴요.새벽에 저절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도 그런 기도 기운 때문이지요.
신새벽이 되면 법당쪽에서 「스님 스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고 방 천장에서 목탁소리가 나기도 하거든요.』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지금까지 테너가수로서 1백회 이상 음악회에 참여했다는 시명(是名)스님의 설명이다.깊은 산의 이런 암자에 까지 스님을 위해 어떤 신도가 기증했다는 피아노를 보는 것도 신선한 느낌이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어느새 캄캄한 밤이다.가까운 계곡에서는 소쩍새가 울어예고 있고,누군가가 소쩍새로 환생해 옹이로 박힌 한(恨)을 암자의 관세음보살님한테 소쩍소쩍 토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0559-521-0019.
글 =정찬주(소설가) 사진=김홍희(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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