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10대>5.新개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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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달초 A사 전산부 金모(34)대리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아르바이트 고교생을 뽑기 위해 면접을 보던 날이다.전산통계라는 까다로운 업무인데다 비교적 고액을 주는 아르바이트이기에 면접시험은 부장.과장등 상사와 팀원이 함께 맡았다.응시한 10명의 여학생중 3명이 맨처음 면접장인 회의실에 들어 서는 순간 金대리를 비롯한 시험관들은 모두들 말문이 막혀버렸다.풀먹인 이불마냥 빳빳하게 머리카락을 세운 것까지는 애교로 치더라도 금.
은박등 현란한 물을 들인 머리가 거의 외국인 모델 수준이었던 것. 『아주 첨단 머리카락이네』라는 金대리의 조크에 그들은 『멋있죠.요즘 다 이래요』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학교 성적도 상당히 우수한 편이었다.
면접관들끼리 일대 공방이 벌어졌다.『실력을 우선해야 한다』는쪽과 『회사 분위기를 생각해야 된다』는 쪽이 대립한 것.결국 회사 분위기를 해친다는 의견에 밀려 낙방시켰다.
지난달 인천에서 화장품점을 개업한 尹모(42.여)씨는 며칠전화장품을 사러온 당돌한 초등학생들에게 모욕(?)을 당했다.
『너희들 벌써부터 화장품을 쓰면 엄마한테 혼나지 않니.』 『별 것 다 묻네요.요즘 기초화장품 안쓰고 어떻게 피부관리해요.
하드형 무스도 하나 주세요.』 『뭐라고 했니.』 『아니 여기선수준 안맞아 못사겠다.얘,다른 데로 가자.』 방학만 지나면 달라지는 얼굴,배꼽티에 형형색색의 염색머리,발크기보다 훨씬 큰 운동화를 끌고 다니는 어색한 걸음걸이,대담한 색조화장,여자보다예쁜 귀걸이를 한 남학생….
어디서든 쉽게 마주치는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다.
『멋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냥 멋있는 거예요.어른들은 남의 시선을 걱정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게 우린 훨씬 더 좋은데요.』 서울노원구상계동 일명 「로데오거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헐렁한 스포츠티.힙합 바지차림에 군화를 신은 李상영(18.고3)군의 거침없는 말이다.아예 외모 자체를 고쳐 멋을 부리는 것도 요즘은 보편화된 현상.서울동작구사당동 M성형외과는 방학때면 의사나 간호사가 쉴틈이 없다.여고생인 주고객(?)들이 대부분 이때 몰려들기 때문.쌍꺼풀 수술은 일반화된지 오래고 최근엔 코를 세우거나 광대뼈를 깎아내는 큰 수술이 더 많다.
『성형수술을 하면 부끄러워 다 아물때까지 숨기게 마련인데 요즘 애들은 그렇지도 않아요.오히려 더 당당해지더라구요.』 L간호사(23)의 말.
이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학부모.교사들도 이들의 파격적인 행동에 스스로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다.
대구K여중의 K교사(37.여)는 학교에 갈때면 외모에 상당히신경을 쓴다.집에 오면 최신 유행가도 익힌다.시골 학교에 있다가 처음 대구로 부임할때만 해도 아이들의 돌출적인 외모와 행동은 물론 알아듣지 못할 말들이 난무해 상담을 해 도 그들의 생각을 읽기가 쉽지 않았다.
『애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접근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어요.
눈높이 교육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K씨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튀는 모습에 염증을 느끼거나 학생 본래의 모습을 지키려 애쓰는 학생들도 많다.서울C여중 3년 박미정(朴美貞.16)양은 『우리는 파격이란 단어의 뜻도 모른다』며 『그건 파격이아니라 탈선』이라고 말할 정도다.
상반된 입장이지만 이 또한 그들만의 개성이다.결국 요즈음 10대들은 「매체환각」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대중매체를 모방하는 증후군과도 같은 「파격」과 70,80년대식 「고전」의 대립속에서 일찍이 어른들이 경험하지 못한 「신(新)개성시 대」를 살고있는 셈이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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