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손으로 하늘 가린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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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일본이 과거사 문제를 솔직히 털어놓고 반성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얼마나 무망(無望)한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두가지 일이 최근 벌어졌다.
하나는 지난 20일(한국시간)채택된 유엔인권위원회의 종군위안부 관련 결의문에 대한 일본정부의 태도다.
인권위의 「여성에 대한 폭력근절」결의문에 대해 일본정부는 종군위안부 관련내용이 본 결의문의 부속문서 형식이었다는 점을 들어 『일본에 대한 국가차원 배상을 요구한 결의가 아니다』고 강변했다. 나아가 정부차원 배상과 관련자를 처벌하도록 권고한 인권소위원회의 보고서를 놓고는 이에 대한 본회의의 결의문이 「유의(Take note)한다」고 했다는 점을 들어 『그저 문서에남겨둔다는 의미』라고 깎아내렸다.
신문들의 보도내용도 제각각이다.요미우리(讀賣)신문은 「위안부결의안 채택」이라는 제목을 붙인데 비해 우익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은 「사실상 불채택」이라고 정반대의 뉘앙스를 풍겼다.
산케이신문은 한술 더 떠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정부의 반성을촉구하는 일본내 민간단체들을 『사회주의의 파산으로 의기소침하던「상갓집 개」들이 기세를 되찾으려 하는가』라고 매도하며 일본판「색깔론」까지 동원했다.
다른 하나는 지난 1일 나가사키(長崎)에서 개관한 원폭자료관을 둘러싼 시비다.
이 자료관은 히로시마(廣島)평화기념관과 달리 제국주의 일본의전쟁책임에 대한 자료도 함께 전시해 주목을 끈 바 있다.
그런데 최근 『전시된 사진들중 난징(南京)대학살 관련장면은 과거 중국이 만든 선전영화의 한 커트』라는 주장이 제기되자 우익들이 반색하고 있다.
의도적으로 연출된 장면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심지어 해당 사진을 철거하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소동 역시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자료관의 난징학살관련 사진은 당초 학살된 피해자의 시신 사진을 전시하려다 『너무 처참해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는 우익의 주장에 밀려 일본군에 의한 연행장면으로 대치한 경위가 있다.
백보 양보해 연행장면 사진이 가짜라고 해도 학살이 사실인 이상 수천장의 진짜 사진과 증언이 남아있는 것이다.
진실은 외면한 채 영어단어와 사진 한장에 매달려 오락가락하는일본의 태도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노재현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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