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방학 풍속도

중앙일보

입력

아빠 회사 견학하기, 친구나 사촌 집에서 자기, 우스운 표정으로 사진 찍어오기. 요즘 아이들의 방학숙제다. 숙제가 이렇게 체험학습 위주로 바뀌다 보니 아빠들이 신이 났다. 숙제를 도우면서 아이들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빠와 체험학습은 환상의 커플

서래초등학교는 방학숙제가 아예 없다. 방학 동안 자신이 한 일 중에 몇 가지를 간단하게 보고서 형식으로 적어오면 된다. 송미선(28) 교사는 “방학이 되면 학원 다니고, 선수학습을 하느라 바쁜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방학숙제를 최대한 없앴다”고 말했다.

이렇게 방학숙제의 트렌드가 바뀌다 보니 아빠의 역할이 커지기 시작했다. 아빠는 엄마에 비해 아이들 교육에 관여할 기회가 적다. 엄마는 혹시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보다 뒤처질까봐 조바심이 나서 학원 하나라도 더 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아빠는 다르다.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폭넓은 사고와 풍부한 감성을 길러주는 체험학습 본연의 의미와 아빠의 교육관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방학숙제 도와주는 즐거운 아빠

오정우(40·도곡동)씨는 딸 유빈(대도초 2년)이와 함께 할 방학숙제 계획표를 만들었다. 이번 방학에도 해야 할 숙제가 많다. 가족과 함께 스티커 사진 찍기, 손톱이나 발톱에 봉숭아 물들이기, 과학캠프 참여하기. 스티커 사진 포즈와 표정은 이미 정해두었다. 봉숭아 물을 들이기 위해서 유빈이와 함께 주말농장에 가서 모종을 심었다. 직접 키운 봉숭아 꽃을 따서 물을 들이면 더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아서다. 학교에서 열리는 과학캠프 참가 준비도 끝냈다. 오씨가 이렇게 딸의 방학숙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오씨는 딸이 공부를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예의 바르고 인성이 제대로 된 아이로 컸으면 하는 바람이 더욱 크다. “학교공부와 관련된 것은 엄마가 전담해요. 저는 공부 외적으로 유빈이의 경험을 넓혀 주려고 합니다.” 방학은 여유가 있어 그동안 못했던 취미활동이나 체육활동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라는 것. 방학숙제를 도와주면서 딸과 대화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하다 보면 자연히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게 된다. “아빠랑 숙제를 같이 하니까 정말 좋아요.”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딸을 보며 오씨는 흐뭇해했다.

이찬(39·신월동)씨도 마찬가지. 평소에는 일 때문에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해 늘 미안하다. 몸이 약한 딸 혜원(양강초 2년)이를 데리고 4년째 캠핑을 다니는 그는 딸이 건강하게 크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다. 이번 방학에는 휴가를 이용해 강원도 부엉이 오토캠핑장을 찾았다. ‘가족들과 여행가기’가 혜원이의 방학숙제이기 때문이다. “같이 텐트를 치고, 고기도 구워먹고, 물놀이도 하면서 그 동안 못했던 이야기를 많이 했죠. 친구들에게 아빠와 캠핑을 다녀왔다고 자랑하는 딸을 보면 아빠로서 보람 있는 일을 한 것 같아 성취감이 느껴져요.” 이런 이씨의 모습을 보고 회사 동료 이경수(35·양평군)씨도 동참했다. 마침 딸 서영(양평초 1년)이도 같은 숙제로 고민 중이었다. 천편일률적인 주입식 교육이 아닌 아이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다는 그는 “아이들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준 것 같아 뿌듯하다”며 웃었다.

프리미엄 송보명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