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뿌리내리고, 한국은 꽃 피웠고, 중국이 열매 맺을 차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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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현 중앙일보 회장과 장옌눙(張硏農) 인민일보 사장 간의 ‘올림픽 대담’은 6일 저녁 베이징의 쿤룬 호텔에서 진행됐다. 홍 회장은 한국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의 공식 초청을 받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 중이다. 홍 회장과 장 사장은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한·중·일 동북아 3국을 중심으로 한 동양 문명의 부흥이 이뤄져야 하며, 이번 올림픽이 인문 올림픽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대담에 이은 만찬의 순서로 진행된 이날 회동에서 오고간 대화를 정리했다.


장 사장=오랜만이다. 부사장 시절 홍 회장 집무실을 방문했던 때를 기억한다. 벽에 걸려 있던 불교 가르침을 담은 액자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홍 회장=인민일보가 창간 60주년을 맞는 해에 올림픽이 열린다는 점이 한층 더 뜻 깊다고 생각한다. 축하드린다. 그리고 개막식에 초청해 주셔서 감사하다.

장 사장=올림픽 개막식에 모실 옛 친구를 꼽으면서 가장 먼저 홍 회장이 생각났다.

◇이번 올림픽의 성과는 정신적인 것이 될 것

장 사장=일본은 1964년, 한국은 88년에 올림픽을 개최했다. 그로부터 꼭 20년 만에 중국 차례가 됐다. 그래서 서울 올림픽의 성공 경험을 많이 참조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홍 회장=한국은 88년 올림픽을 치렀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2년의 월드컵 축구대회를 조금 더 성공적으로 치렀다. 한·중·일 3국을 보면 64년 일본이 올림픽을 개최했고, 88년에 한국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치렀다. 이번에는 중국이다. 일본이 뿌리를 내렸다면 한국이 꽃을 피웠고, 이제는 중국이 열매를 맺을 차례다.

장 사장=서울 올림픽 주제가는 ‘손에 손잡고’였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 주제인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同一個世界, 同一個夢想)’이란 구호와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홍 회장=이번 올림픽을 통해 중국의 문화와 다민족 사회의 우의, 공존의 정신 등이 세계에 소개될 것이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최근 외국 매체들과 인터뷰하면서 “이번 올림픽의 성과는 정신적인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 동의한다.

장 사장=동감이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도 “이번 올림픽을 통해 유일무이한 자산이 남겨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로게 위원장이 정신적 자산을 언급했다고 믿는다.

◇100년 후 오늘날의 건축물을 보고 싶다면 베이징을 가야 할 것

홍 회장=올림픽 주경기장 냐오차오(鳥巢), 수영장 수이리팡(水立方) 등 중국을 대표하는 건축을 세계적인 외국 건축가에게 맡길 수 있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국가대극원과 CC-TV(중앙방송국) 설계도 외국인이 했고, 서우두(首都) 국제공항 제3터미널은 세계적 건축가인 영국의 노먼 포스터가 설계했다. 바로 이것이 중국이 세계 강국으로서 그 힘에 걸맞은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관용과 아량이라고 생각한다.

장 사장=주요 건축물의 설계를 외국인에게 맡길 정도로 중국의 배포가 크다는 평가가 있다. 그러나 일부 네티즌은 “베이징이 세계 건축가들의 실험장이 됐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홍 회장=이렇게 좋은 건축물을 많이 세우면 자라나는 젊은 건축가들에게 좋은 학습거리가 될 수 있다. 이미 I M 페이라는 걸출한 건축가가 나왔다. 그는 미국 워싱턴의 중국 대사관 건물,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등 걸출한 작품을 설계했다. 100년 혹은 200년 후쯤 오늘날의 건축물을 보고 싶다면 베를린과 베이징을 가야 할 것이다. 베를린에서도 감명이 깊었다. 베를린 국회의사당은 연합군에 의해 파괴됐다. 그 돔을 복원하는 일을 노먼 포스터에게 의뢰했다.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 보여줄 것

장 사장=베이징 올림픽을 지켜보는 중국인들은 ‘바이녠멍위안(百年夢圓·백년의 꿈이 이뤄졌다)’이란 말을 자주 한다. 1908년 톈진의 한 작은 잡지사에 근무하는 기자가 글을 통해 세 가지 질문을 제기했다. 첫 질문은 ‘중국은 언제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을까’였다. 둘째는 ‘언제쯤 중국이 첫 메달을 딸까’였고, 마지막 질문이 바로 ‘중국은 언제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을까’였다. 100년 전에 올림픽 개최의 꿈이 잉태된 것이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100년 꿈’의 실현인 셈이다.

홍 회장=93년 중국의 첫 올림픽 유치 실패는 가슴 아팠겠지만, 2008년 개최가 결과적으로 보면 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눈부시게 발전한 중국의 면모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장 사장=전적으로 동의한다.

◇중국은 봉건사회에서 현대화 사회로 발전 중

장 사장=지난 100여 년은 중국이 굴욕을 경험하고 서서히 굴기하는 시기였다. 우리는 이 100년을 ‘부흥의 길’이라고 부른다.

홍 회장=한국에서도 ‘대국굴기’와 ‘부흥의 길’이 화제다. 이명박 대통령도 여름 휴가 때 대국굴기 DVD를 들고 가서 보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장 사장=중국은 지금도 대변혁 시기다. 봉건사회에서 현대화 사회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이다. 비유컨대 중국이라는 큰 배가 싼샤(三峽)의 대협곡을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여기를 지나야 비로소 안정과 현대화가 이뤄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중국인들이 만족하는 이유가 하나 있다. 우리가 걷는 길이 옳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 당과 국가가 내세운 과학발전관, 인본주의(以人爲本) 정신이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지금과 같은 지속 가능한 발전이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미국의 조사기관에 의한) 각국 국민의 정부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중국인의 86%가 만족도를 표시했다. 조사 대상 중 최고치다.

홍 회장=중국은 56개 민족이 같이 사는 나라다. 전체를 발전시키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전 세계 60여억 명 인구 가운데 중국은 약 20%를 차지한다. 이런 중국이 앞으로 일류 국가가 되면 인류 전체가 크게 도약하는 결과가 된다.

장 사장=중국은 벌써 ‘올림픽 이후’(post olympic)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언론도 이것을 연구하고 있다. 올림픽을 통해 얻은 영양분으로 중국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세계와 하나가 되는 방법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 인민일보는 1년 전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관심도를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응답자는 금메달 수에 큰 관심을 보였다. 최근 조사는 다른 결과를 보였다. 세계인을 어떻게 만족시킬지, 생활이 얼마나 개선될지, 올림픽이 사회발전을 얼마나, 또 어떻게 촉진할 수 있을 것인지가 주요 관심사였다.

홍 회장=올림픽 준비가 중국 인민의 의식을 크게 변화시켰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엄청난 돈과 자원을 투자했겠지만 이 과정에서 국민이 하나가 되고 세계와의 교류, 그리고 우의 증진에 대한 인식도 높아졌으리라고 본다. 올림픽 투자가 전혀 헛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중 양국의 우의 증진을 위해 중앙일보와 인민일보가 앞장서자

홍 회장=최근 한국 한 방송이 개막식 리허설을 먼저 보도해 중국 네티즌이 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혹시라도 이 때문에 한국 선수들이 홀대받거나 불공정한 대접을 받을까 봐 우려하는 한국인들이 있다. 인민일보가 보도를 잘 해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주면 고맙겠다.

장 사장=영향이 없도록 하겠다. 혹시라도 그런 일이 생기면 곧바로 평론을 내서 막겠다.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당시 CC-TV 해설자가 한국을 혹평해 파문이 생겼을 때도 인민일보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인민일보는 왜곡된 여론 흐름을 바로잡을 역량이 있다. 이 자리에서 홍 회장께 제의하고 싶다. 양국 국민이 일부 문제로 오해가 생기거나 정서적으로 과격해지는 일이 생기면 중앙일보와 인민일보가 서로 적극적으로 나서자는 것이다.

홍 회장=아주 좋은 제안이다. 인민일보의 영향력과 비교하면 중앙일보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겠다.

장 사장=오해가 생길 때는 사건의 진상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적시에 진상을 밝혀 인민의 격정을 가라앉히는 것이 중요하다.

홍 회장=중앙일보는 평소 중국 관련 보도에 큰 힘을 기울여 왔다. 한국 언론사 가운데 최초로 중국연구소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앞으로 이를 더욱 발전시킬 것이다.

장 사장=인민일보도 한국의 신문들을 구독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일보의 객관적이고 공정한 관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성숙하고, 엄숙하다. 또 온화하고 이성적이다.

홍 회장=개막식 초청에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21세기에는 양국 모두 과거의 잃어버린 100년을 만회하자. 세계사적 발전을 이룩하는 데 인민일보와 중앙일보가 기여하자.

장 사장=두 신문이 앞으로 양국의 우호관계 발전에 큰 역할을 하자. 미디어 교류를 통해 국민의 교류를 촉진하도록 하자.

정리=진세근·장세정 특파원
사진=김경빈 기자


인민일보 올해로 창간 60주년 맞은 공산당 기관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로 중국을 대표하는 신문이다. 1948년 6월 15일 창간됐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제호를 썼다. 현재 중국 전역과 세계 100여 국가에서 신문을 낸다. 국내 발행 부수는 200만 부 정도다. 산하에 국제 뉴스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환구시보(環球時報)와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종합지 경화시보(京華時報) 등의 일간지 8종과 시사 잡지 19종을 발행하고 있다.

장옌눙 사장 세계가 주목하는 ‘인민일보 평론’ 대표 논객

1948년 후난(湖南)성 출생. 베이징 101 중·고를 졸업한 뒤 문화혁명 당시 마련된 임시 교육기관에서 대학 과정을 마쳤다. 전공은 철학. 중앙선전부 부비서장을 거쳐 96년 인민일보 편집위원 겸 이론부 주임이 됐다. 부총편집과 총편집을 역임한 뒤 올해 3월 인민일보사 사장에 취임했다. 인민일보의 ‘평론’란은 중국이 나아가는 방향을 밝히는 글로, 중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다. 그는 지금도 이 평론에 칼럼을 쓰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 논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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