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이상한 좌우 동거 … ‘선진’도 ‘창조’도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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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회에 ‘선진과 창조의 모임’이란 새 교섭단체가 생겼다. ‘정통 보수’를 표방한 자유선진당과 ‘창조적 진보’를 내세운 창조한국당이 손잡고 만든 명패다.

양당은 6일 국회에서 ‘좌우 동거’를 공식 선언했다.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자신이 “부패 정치인”이라고 비난했던 이 총재와 합의문을 교환했다. 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회사 경력 있다고 경제 대통령이냐”고 깎아내렸던 문 대표에게 “애 많이 쓰셨다”고 격려했다. 회의장에선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지난 5월부터 추진됐던 ‘좌우 동거’는 이렇게 현실이 됐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의 느닷없는 포옹은 첫날부터 삐걱댔다. 정책 공조를 선언한 첫날부터 양당은 여러 현안에 대해 엇갈린 논평을 냈다.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에 대해 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은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창조한국당 김석수 대변인은 “파병 반대”를 주장했다. 해외 파병은 보수와 진보가 부딪치는 대표적 이슈다. KBS 정연주 사장에 대한 감사원의 해임 건의안에 대해서도 양당은 “즉각 사퇴(선진당)”와 “해임안 철회(창조한국당)”로 맞서고 있다.

이런 충돌을 예상했는지 양당은 최종 합의문에 이런저런 단서를 달았다. “대운하, 미국 쇠고기, 중소기업, 공교육 등 네 가지 정책만 연대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정당 활동은 독자적으로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정체성이 전혀 다른 두 정당의 동거는 곳곳에 갈등의 불씨를 남겨두고 있다. 민주노동당과의 연대 문제가 대표적이다. 진보정당인 민노당과 연대하는 문제를 놓고 양당은 협상 과정에서도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문 대표는 합의문 서명 이후에도 “민노당에 의사 일정 등 필요한 서비스를 하겠다”고 연대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갈등을 예고한 셈이다.

양당은 “교섭단체는 의사 일정을 논의하기 위한 최소한의 단위일 뿐 정체성과 상관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정당 활동이든 원내 활동이든 그 바탕엔 정책과 이념이 깔려 있다. 이를 놓고 경쟁하면서 유권자의 지지를 얻어내는 과정이 바로 정치다. 무엇보다 지난 총선 때 이들은 각각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앞세워 ‘한 표’를 호소했다. 그런 그들이 이제 와서 ‘묻지마 동거’를 하겠다는 모습은 납득하기 힘들다.

서명식에선 “남녀가 택시에 합승했다고 결혼하는 건 아니다”(창조한국당 김동규 전 대변인)는 말이 나왔다. 원 구성 협상 등에 끼기 위해 급한 마음에 교섭단체란 택시에 합승한 것뿐이란 얘기다. 그러나 서로의 정체성을 애써 외면해 가면서 무작정 올라탄 택시는 결코 ‘선진적’이고 ‘창조적’인 수단이 아니다. 정상적인 남녀라면 목적지가 다른 택시에 동승하지 않는다. 좌우의 불안한 동행이 시작됐다.

정강현 정치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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