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홈뉴패밀리>25.'DJ덕'부를줄 알아야 신세대 아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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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회사원 진회창(47)씨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요즘 젊은 가수들의 신보(新譜)를 뚜르르 꿰고 있다.「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는 물론「DJ 덕」의『OK,OK』,김정민의『마지막 약속』까지모르는 게 없다.『고1짜리 아들녀석을 이해하기 위해서지요.사춘기 들어서면서 좀처럼 아빠와 얘기를 안하려 들어 그 애가 좋아하는 음악부터 정복해 나가기로 했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전성기 때는 어렵게 사인을 얻어다 주기도 하고 브로마이드를선물하는 등 「귀높이」를 맞추려는 노력 끝에 지금은 시시콜콜한것까지 아빠에게 의논하는 친구같은 부자(父子)사이가 됐다.
외국인 회사 상무인 한민석(43)씨는 지난 6일 문화일보홀에서 있었던「이소라 콘서트」를 중1짜리 큰 딸과 오붓하게 즐겼다. 딸은 「패닉」이나 「룰라」를 더 좋아하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재즈풍 노래도 즐기도록 해주고 싶어서』였다.
토요 휴무제 직장에 다니는 덕분에 주말 낮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다는 그는 앞으로도 딸과의 여가시간을 자주 가질 생각이다.
이렇듯 「아이는 아빠도 함께 키우는 것」임을 선언하며 다양한노력으로 자녀들과의 거리를 좁혀가는 신세대 가장(家長)이 늘고있다. 가정보다 직장에 헌신할 것을 요구하는 산업사회의 톱니바퀴 속에서도 아버지의 참모습을 찾은 이들은 『조금만 노력하면 아버지 역할처럼 보람있고 재미있는 것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매년 4월을 「아이들 방 새로 꾸며주는 달」로 정해놓고 아이와 함께 풀을 쑤어가며 방 한면을 재미있게 디자인해 도배하는 아빠,스승의 날이면 아이 학교를 찾아 엄마들 틈에 끼어 일일 명예교사를 자청하는 아빠….
자그마한 사업체를 경영하는 나정민(41)씨는 딸 윤정이의 유치원 「아빠 파티」에 열심히 참여했다가 같은 동네 아빠들을 자연스레 사귀게 돼 지난 연말에는 가족들끼리 홍콩여행까지 다녀온케이스. 하지만 좋은 아빠 노릇은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으로는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의변경환(卞璟煥)총무는 『1박2일짜리 자녀와의 기차여행을 경험한아버지들은 이구동성으로 다음번에도 꼭 참가하겠다고 다 짐하지만직장일 때문에 지속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좋은 아빠 운동」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리려면 개인이 아닌 직장과 사회차원에서 정책적인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근 「부성(父性)계발에 관한 연구보고서」를 내놓은 한국여성개발원 변화순(卞化順)복지가족실장은 『자녀교육에 있어 아버지의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다』고 전제,『그러나 마음은 있어도 시간이 없거나 구체적인 방법을 몰라 못하 는 가장이 더많은 것같다』고 지적한다.
이런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우리나라 직장도 토요 휴무제 등 가변적인 근무조건을 활성화해야 하며▶아버지 교육이 직장내 교육 등을 통해 널리 확산돼야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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