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거포럼>동대문乙 합동연설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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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0일 서울 전농초등학교에서 열린 동대문을 합동연설회.봄비로교정은 온통 진흙탕이었다.그래도 많은 인파가 몰려 교정은 후보이름을 연호하는 지지자 열기로 뒤덮였다.
야당 후보가 김영삼(金泳三)정권의 실정을 물고 늘어지자 신한국당 김영구(金榮龜)후보가 방어에 나섰다.손짓.몸짓을 섞어 유권자에게 한 표를 호소하는 모습이 강렬하다.지지자가 판소리 북처럼 박자를 맞춰 박수를 친다.리듬감이 상당하다.
그러나 金후보의 연설이 끝나자 유세장은 썰렁했다.일반 유권자보다 지지자를 동원한 축제인 듯 하다.
「개혁속의 안정」.열세가 점쳐지고 있는 신한국당은 이번 총선에서 이렇게 호소하고 있다.金후보도 『미국이 여소야대가 돼 연방정부 업무가 중단됐다.이것이 바로 여소야대의 실체』라며 정국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개혁」과 「안정」.이 말은 격동기의일본 정국을 떠올리게 한다.
93년7월 일본 정치는 전후 최대의 전환점을 맞았다.며칠전 사망한 가네마루 신(金丸信.전자민당 부총재)이 자민당 최대 파벌 게이세이카이(經世會.다케시타파)회장을 사임하면서 비롯된 파벌 싸움으로 자민당이 분열됐다.자민당은 총선에서 과반수를 크게밑돌아 정권을 내주었다.
당시 자민당은 야당측이 내건 「개혁」깃발에 「안정」으로 맞섰다.그러나 국민은 자민당에 「노(No)」라는 심판을 내렸다.「개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정국 역전을 위한 발림으로 하는 말이라고 국민들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민당을 거부했다.「안정」이란 말에서 책임 회피성 태도를 느꼈기 때문이다.
정치는 갑자기 쌓여있던 것이 폭발,대전환을 한다.당시 게이세이카이 담당기자로 현장에 있었던 기자에게 92년의 게이세이카이분열에서 자민당 정권 붕괴까지 약 1년은 그러했다.신한국당이 내건 「개혁속의 안정」에 유권자가 어떤 평가를 내릴 지 흥미롭다.지난해 3월 한국에 부임한 이래 한국 정치.사회의 격동을 접하면서 솔직히 놀라고 있다.한국이 경제적으로 큰 발전을 이룬것은 틀림없다.앞으로는 정치.사회 시스템 차례일 것이다.이같은관점에서 이번 선거전을 보고 있 다.
그러나 「역시」라고 해야할 만큼 일본과 흡사하다.선거전만을 보면 쟁점은 정책이 아니라 당의 이미지 싸움 같다.각 당 모두어떻게 다른 당 당수가 신뢰할 수 없는 인물인 지를 유권자에게인상 지우는데 온 힘을 쏟고 있는 것처럼 보인 다.
소선구제 아래에서 승자는 1명이다.라이벌 당과 후보자의 이미지를 깎아내리는 것이 승리의 첩경이라지만 너무 열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아군외에는 모두 적」이란 의식이 지나치면 응어리를 남긴다.과도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스스로에게 상처를 주고정치에 대한 신뢰를 없앤다.
한국에 중요한 대북(對北)정책은 그다지 쟁점이 되고 있는 것같지 않다.그러나 지금의 한국 정책은 미국과 일본의 인식과는 차이가 있다는 느낌이다.산발적인 문제 제기는 있지만 북한의 붕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치르는 선거 로는 약간 의외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외교는 총선에 맞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북한 문제는 한국 입장에서 외교문제일 뿐만 아니라 「내정」이 아닌지.
지금 서울에 있는 외국인 기자에게는 선거후 한국 정국이 어떻게 될 것인가,金대통령의 정권 기반이 어떻게 될 것인지가 최대의 관심사일 게다.
정국이 긴박할 때 정치인은 일반인이 예상못하는 결단을 내린다.일본에서도 그러했다.만약 한국에도 이같은 사태가 온다면 틀림없이 상식을 넘은 상황 전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시카와 이치로 니혼게이자이신문 서울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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