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서 주차 봉사, 굉장하다” 도야코 귀엣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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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01면

지난달 9일 일본 도야코에서 열린 G8 확대 정상회의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김일범씨(청와대 통역)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반가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지명위원회(BGN)의 독도 영유권 표기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직접 지시로 원상회복된 것은 한·미 외교사에 기록될 정도로 이례적인 일이다. ‘독도 대반전’이라 할 만하다. 서울과 워싱턴 외교가의 핵심 인사들은 부시가 방한(5~6일)을 앞두고 한국에 준 선물, 미 국무부 내 한국 라인의 적극 개입, 한국 측의 사활을 건 ‘몰입외교’가 함께 작동한 결과로 보면서도 “부시와 이명박 대통령의 내면을 연결하는 인간적인 취향과 코드를 무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독도 대반전, MB 살린 부시의 ‘기독교 스킨십’

청와대 관계자는 “양 정상의 깊은 신뢰와 우정이 밑바탕이 됐다”고 평가했다. 4월 캠프 데이비드 회담과 지난달 도야코 주요 8개국(G8) 회담에서 두 차례 만났던 두 사람은 무엇으로, 어떻게 통(通)했던 것일까. 정부 고위 소식통은 2일 “부시 대통령이 독도 영유권 표기를 원상회복시킨 것은 미국의 또 다른 동맹국인 일본과 충돌을 무릅쓰고 취한 외교적인 의외의 조치”라면서 “의외성을 설명하는 고리는 부시 대통령이 도야코 회담에서 이 대통령에게 보여준 친밀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7월 9일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주요 8개국과 이 회의에 초대된 7개국(한국·중국·인도·브라질·멕시코·호주·인도네시아) 정상들이 회담장인 윈저호텔 1층 잔디밭에 모여 환담을 나누던 참이었다. 포토 라인 너머에서 정상들의 동선을 쫓고 있던 카메라기자들의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기 시작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와 함께 얘기를 나누던 부시 대통령이 이 대통령이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이 대통령 쪽으로 걸어가 “Hi, President Lee You are late!(이 대통령 지각했네)”라고 반기며 포옹하듯 인사하는 장면이 벌어졌던 것. 부시 대통령은 이 대통령의 통역인 김일범 청와대 행정관까지 양팔로 안는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정래권 기후변화 대사는 “사흘 동안 열린 행사 기간 중 두 나라 정상이 그렇게 친밀감을 과시하고 카메라 플래시가 한꺼번에 터진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여덟 번째 G8 회의에 참석하는 부시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에게 다가가 “서로 만난 적 있느냐”고 물은 뒤 이 대통령을 소개했다. 부시는 이 대통령의 팔을 잡고 잔디밭에 모인 12명의 정상에게 일일이 소개시켰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그때까지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잔디밭 환담이 계속되던 중 부시 대통령이 이 대통령과 한동안 귀엣말을 나누는 장면도 다른 정상들의 시선을 끌었다. 외교가 소식통은 뒤에 부시의 다음과 같은 귓속말 내용을 이 대통령에게서 전해 들었다고 한다.

“당신이 새벽마다 교회 주차장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하지 않았느냐. 그건 정말 굉장한 거다.”

이 대통령은 1992년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매주 일요일 새벽 6시 자신이 다니던 서울 신사동 소망교회 주차장에서 3년4개월 동안 주차요원으로 봉사한 적이 있다. 소망교회 장로가 되기 위한 여러 ‘필수 코스’의 하나라고 한다. 열성적인 봉사활동 덕분에 이 대통령은 형인 이상득 의원과 함께 95년(94년에는 투표에서 탈락) 장로가 됐다.

부시도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기독교 원리주의자다. 술을 즐기고 자유분방하게 살았던 그는 마흔이 되면서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교회에 열성적으로 다녔다. ‘거듭 태어났다’는 뜻의 ‘본 어게인 크리스천(Born Again Christian)’이다. 이명박-부시의 종교적 코드는 이렇게 통하고 있다.

다시 도야코로 돌아가 보자.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화제는 한국의 촛불시위로 옮아갔다. 부시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젊은 시절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고 들었다. 인생은 ‘업(UP) 앤 다운(down)’이 있고, 고생은 곧 사라진다. 확신하건대 잘될 거다”라고 언급했다고 정부 고위 관계자가 전했다.

1시간으로 예정된 회담에서도 부시 대통령은 한·미 간 현안을 완전히 파악해 매우 적극적으로 임했다. 이 대통령이 “당신이 임기 전에 꼭 해줘야 할 일이…”라며 말을 꺼내자마자 “아! FTA. 안다,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또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언급했을 때도 스태프를 향해 “누가 담당이지? 잘 챙겨라”고 바로 지시를 내리는 식이었다. 이래서 회담은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 당겨진 40분 만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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