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이게 다예요"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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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지난 3일 세상을 떠났다.83세.그녀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 저승의 창문이 훨씬 크게 느껴지는 가운데 문득 문득 이승의 그림자가 어른거릴 때마다 필사적으로 펜을 부여잡고 무언가를 쓰려 했다.아직 목숨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걸 그녀는 무언가를 쓰는 걸로 확인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글은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금방 호흡이 곤란해졌다.펜은 그녀의 손에서 굴러떨어졌고 또 혼수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
흰 종이에 그녀가 남길 수 있었던 문장이란 고작 서너개 정도.
그것도 그녀의 숨소리처럼 짧고 가쁘다.다시 의식이 회복되면 그녀는 여전히 펜을 움켜쥐었다.그런 식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기록한 마지막 작품이 『이게 다예요』다.
단순한 이유로 이 책은 흥미를 끈다.죽음 앞에서 과연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어땠을까 하는 것.
적어도 그녀만큼은 죽음에조차 굴복하지 않을 것처럼 여겨졌으니까.프랑스나 세계 문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우리 일반독자에게는 그다지 잘 읽히지 않고 있다가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 『연인』으로 얼마간의 그녀 원작이 뒤늦게 팔려 나갔을 정도니 폭풍과도 같았던 그녀의 광기어린 열정,나치에의 가열찬 저항과 5월 혁명의 선봉에 섰던 그녀의 모습은 소상히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누구보다 파격적이면서 고통스럽고,격정적이면서 자유스런 삶을 살아온 그녀가 여든 세살로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 때의 모습이란 어떤 것이었을까.이 마지막 인상적인 작품은 그 점을 잘 보여준다.지나온 삶을 갑자기 통째로 후회하지도 않 고,절대자에게 내세를 기대하지도 않으며,두려움으로 지레 좌절하지도 않는 뒤라스의 한결같은 모습을.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책 한권을 쓸거야』라며 펜을 움켜쥐었던 그녀에게선 결코 삶을 통속적으로 살지 않았다는 자신감과 글을 쓰며 살고 있는 세계의 모든 작가에게 창작의 신성함을 일깨우려는 무서운 의지조차 엿보인다.
〈소설가〉 구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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