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대학평가와 公正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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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에 발표된미국 대학순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매우 많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전공별로 대학의 순위가 다르다는 점이다.가령 법학은 예일대,경영학은 스탠퍼드대,공학은 MIT대 등으로 다르고 의학의 경우 연구분야는 하버드대,임상분야는 워싱턴대등으로 세부전공에서도 순위가 다르다.또 이러한 순위가 매년 바뀐다는 사실이다.가령 스탠퍼드대는 경영학에서 지난해 3위였으나올해엔 1위로 뛰어올랐다.
이에 비해 한국 대학의 실상은 어떤가.우리의 경우 대학의 서열이 이름에 의해 단순서열화돼 있고,그 서열은 수십년이 지나도바뀌지 않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런 우리나라와 미국의 경우를 놓고 볼때 어느쪽이 대학의 연구와 교육에서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지 그 대답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우리 대학은 왜 이름에 의해 단순서열화돼 있는가.
첫째,무조건 일류지향적인 우리 사회풍토가 원인이다.대학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내용보다 간판과 이름을 좇는 풍토가 만연해 있다.소위 간판 위주의 사고다.대학 선택의 경우 각 대학의교육.연구에 관한 내실을 생각하기보다 어떤 대학 이름을 더 알아주는가만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둘째,대학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대학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연구와 교육성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나올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 대학은 연구업적과 교육성과에 관한객관적 자료를 내놓기 힘들거나 꺼리는 분위기다.
따라서 대학을 평가하는 유일한 기준이란 신입생 입학시험 커트라인이고 이 커트라인은 대학별로 서열화돼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셋째,각 고교와 입시학원의 대학선택지도가 잘못돼 있다.이들은 학생의 적성이 어떻든 일류대.특정대 합격생 수를 불리기 위해 급급하고 이에 따라 대학을 일률적으로 이름별로 서열화해 학생을 배치하고 있다.
넷째,각 시.도교육청의 잘못이다.각 시.도교육청이 일선고교의학습능력을 특정대의 입학생수로 판단하는 현실에서는 일선고교가 적성에 의해 대학을 선정하도록 지도하기 힘들다.
다섯째,언론의 일류대 위주 보도성향이 큰 원인이다.우리 언론의 입시 관련 보도태도는 소위 주요대학이라 하여 불과 5~6개정도의 대학 뉴스만 연일 신문과 방송에 취급하고 특정대의 수석합격자를 영웅시하기까지 한다.이러한 일류대.특정 대 위주의 보도및 고교별 특정대학 합격자수를 공개하는 것 등은 매우 비교육적인 것으로,대학의 단순서열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우리 대학의 세계 경쟁력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그래서 최근 어떤 대학에서는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다.그러나 우리에게 진정 필요하고 시급한 것은 각 대학이 이름에 의해 단순서열화됨으로써 모든 대학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는 현상을 막는 한편 대학이 자율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일이다.
대학간 선의의 경쟁이 더욱 촉진돼야 하고 이에 따라 대학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특히 이러한 경쟁이 공정히 이루어지기 위한 공정경쟁환경 조성이 매우 중요하다.이는 일반상품이품질에 의한 경쟁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가 보 장돼야 하는 시장원리와 같다.
공정경쟁환경이란 어떤 대학이든 노력에 의해 대학의 질을 높일수 있고,그에 대한 공정한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그에 따라 우수한 학생을 모집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지금과 같이 대학이 이름에 의해 서열화되지않을 뿐만 아니라 여러 대학이 전공별로 서열이 다르고 그 서열도 매년 바뀔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될 수 있다.또 이렇게 되면대학과 대학교수들도 신나게 경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徐義鎬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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