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보다 멋진 밀라노의 중년 남자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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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15면

이탈리아 고급 수트 브랜드 ‘꼬르넬리아니’ 창립 50주년 행사에 참관하기 위해 이탈리아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몇 가지를 느꼈다. 옷이든 요리든 자동차든 이탈리아인들이 만드는 것이 ‘예술적인’ 이유는 역시 예술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는 훌륭한 고성과 성당, 광장이 많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거기서 젤라토(아이스크림)를 먹고 숨바꼭질하며 놀았겠지.

또 한 가지는 전통을 대하는 태도다. 우리 생활은 전통과 격리돼 있다. 동대문은 자동차로 포위됐고 덕수궁은 사생대회 이후 언제 가 봤는지 기억도 안 난다. 반면 이탈리아인들은 전통과 현재를 애써 구분하지 않는 듯했다. 우리의 전통이 ‘바라보는 전통’이라면 그들은 ‘쓰는 전통’이랄까.

이런 느낌보다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던 건 ‘이탈리아 남자’들이었다. 재미있는 건 이탈리아 남자는 청년보다 중년이 더 멋있다는 거다. 이탈리아 청년들은 그다지 특별하달 게 없었다. 패션의 도시 밀라노 청년들은 옷을 잘 입긴 했지만 여느 대도시 청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면 밀라노의 중년 남자들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멋있었다. 몇몇 중년 남자의 ‘포스’는 입 벌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갈색 보트 슈즈에 통 좁은 흰색 데님 바지, 남색 블레이저, 그리고 가벼운 중절모를 쓴 채 낡은 자전거로 유유히 광장을 가르는 모습은 요새 애들 말로 ‘간지 작살’이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왜 이탈리아 중년 남자는 청년보다 멋있을까?’

청년은 ‘루키’요, 중년은 ‘베테랑’이다. 베테랑은 그간의 풍부한 경험으로 노련함을 얻었다.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시도해 본 덕분에 자기한테 맞는 룩을 잘 안다. 전통 복식의 본질이 무언지도 짐작한다(내 생각에 서양 남자 복식의 본질은 ‘긴장’에 있다).

트렌드의 덧없음도 느껴 봤다(캔버스 스니커즈? 우린 옛날에 그걸 ‘BB화’라고 불렀지). 트렌드 따르는 데 급급한 남자보다 기본적인 룩을 잘 소화하는 남자를 여자들이 더 좋아한다는 사실도 안다.

그 덕분에 루키 시절보다 더 자유롭다. 전통을 그대로 따르기도 하고, 그게 지루하면 거기에 좀 튀는 벨트나 큰 가방 같은 포인트 액세서리를 더한다. 응용력도 풍부해져 꾸준히 입던 옷에 트렌디한 아이템을 조금 더해 변화를 줄 줄 안다.

‘갈색 구두에 회색 양말’이라는 정답을 알면서 일부러 ‘형광 노랑 양말’이라는 오답을 제출한다. 그리고 되레 그걸 즐긴다. 한마디로 패션을 가지고 논달까? 그 자신감은 그의 허리를 곧게 세우고 걸음을 당당하게 하며 악수하는 손에 힘이 넘치게 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어울려 그의 몸에서 빛이 나게 한다.

따라하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이탈리아 중년 남자 닮기에 열심이다. 그 대열에 합류한대도 말리고 싶진 않다. 멋 부려서 남 주는 거 아니니까.


현직 남성 잡지 기자인 송원석씨는 ‘신사, 좀 노는 오빠, 그냥 남자’를 구분 짓게 하는 ‘매너’의 정체를 파악, 효과적인 정보를 소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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