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영사령관 체포 全씨 명령 예하부대장교 "명분없다"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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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전두환(全斗煥)전대통령은 자신이 합동수사본부장이던 79년12월12일 밤 두차례에 걸쳐 이건영(李建榮)3군사령관 체포를 시도했으나 3군사령부 예하부대 장교들의 거부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全씨는 육본 지하벙커에 숨어있던 노재현(盧載鉉)당시 국방장관을 다음날 새벽 찾아내 盧씨를 통해 李사령관을 국방부로 나오도록 한뒤 청사 정문앞에서 체포,보안사 서빙고분실로 연행했다는 것이다.
12.12및 5.18사건 수사 검사들에 따르면 全씨는 12일오후10시쯤 윤성민(尹誠敏)당시 육군참모차장과 장태완(張泰玩)수경사령관의 병력동원 요청을 받은 李사령관이 출동채비를 서두르자 3군사령부 예하 보안부대장과 헌병대장등을 차 례로 동원,李사령관을 체포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합수부의 체포지시를 받은 金부년 3군사령부 보안부대장등이 『위기상황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직속부대 상관을 체포할명분이 없다』며 거절,李사령관 연행에 실패했다고 검찰은 밝히고있다. 검찰조사에서 이들은 『아무리 합수부장의 명령이라도 지휘계통을 무시한채 어떻게 사령관을 우리 손으로 체포할 수 있겠느냐』고 하소연까지 했다는 것.
물론 全씨 지시를 뿌리친 金대령등 4~5명의 간부들은 12.
12직후 보안분실로 연행돼 혹독한 취조를 받은 끝에 군복을 벗어야 했다.
수많은 장성들이 12일밤 우왕좌왕하며 눈치를 살피고 반역을 일삼는 극도의 혼란속에서 비록 영관급 장교에 불과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이들이야말로 「참군인」이 아니겠느냐는 게검찰의 설명이다.
최세창(崔世昌)3공수여단장과 박종규(朴琮圭)15대대장이 정병주(鄭柄宙)특전사령관을,조홍(趙洪)수경사헌병단장과 신윤희(申允熙)부단장등이 직속상관인 장태완수경사령관을 무력으로 체포했던 것과 좋은 대비가 된다.
한편 이건영사령관은 검찰조사에서 『3군중 동원가능한 병력이 26,30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 등이었으나 이들을 서울로 진입시킬 경우 전방이 위태롭게 된다는 점과 아군끼리의 무력충돌을 우려해 부대이동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진술 했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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