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 잃어가는 아버지 보며 눈으로 느끼는 게 옳은가 의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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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사진=김경빈 기자]

“그늘의 삶 같단 생각이 자꾸 들어요. 사는 게 꼭 그늘을 짓는 것 같다….”

문태준(38·사진) 시인이 네 번째 시집 『그늘의 발달』(문학과 지성)을 냈다. 미당문학상·소월시문학상 등을 잇따라 거머쥐며 ‘서정시의 적자’로 인정받은 그가 『가재미』에 이어 2년 만에 들고 온 작품집이다.

# 그늘과 아버지

‘아버지여, 감나무를 베지 마오/감나무가 너무 웃자라/감나무 그늘이 지붕을 덮는다고/감나무를 베는 아버지여/그늘이 지붕이 되면 어떤가요/눈물을 감출 수는 없어요’(‘그늘의 발달’ 중)

그늘 치우는 아버지를 말리는 시인. “습하고 젖은, 아프고 슬픈 시간과 눈물. 인생이란 어차피 그런 그늘을 늘려가는 게 아닌가…. 사는 것 자체가 병석이란 생각도 들어요.”

‘그대는 엎질러진 물처럼 누워 살았지/나는 보슬비가 다녀갔다고 말했지/나는 제비가 돌아왔다고 말했지/초롱꽃 핀 바깥을 말하려다 나는 그만두었지 ’(‘문병’ 중)

‘눈물을 잊은 적이 없는 눈동자’(‘늪’)란 시구처럼 시를 쓰는 동안 눈물이 마르질 않았단다. ‘아버지께 이 시집을 바친다’는 ‘시인의 말’에서 까닭을 찾을 수 있었다.

‘가을 풀밭에 앉아 있었네//가을 풀벌레는/무릎 주름에서 우네//걸어가며 울던/나의 어머니’(‘귀2’ 중)

백내장과 녹내장이 겹쳐 겨우 열쇠구멍만한 시야만 남은 칠순의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밭일에 나선다.

# 귀로 보기

‘눈이 멀어 사방이 멀어지면/귀가 대신 가/세상의 물건을 받아오리/꽃이 피었다고/어치가 와서 우네/벌떼가 와서 우네/한 송이 꽃 곁에 온/반짝이는 비늘들’(‘한 송이 꽃 곁에 온’ 중)

장엄한 오케스트라에서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를 떼어 청음하듯 감각은 귀로 쏠린다. 시인은 시력을 잃어가는 아버지의 자리에 눈을 감고 선다.

‘아이가 학교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올 적에/나는 또 한 말을 내어놓는다/이제 오느냐,//말할수록 맨발 바람으로 멀리 나아가는 말 ’(‘이제 오느냐’ 중)

“눈으로 감각하는 게 온전한 것일까. 심안(深眼)으로 세계를 감각하는 게 아닐까….”

그런 질문들에서 시가 내려앉았다. 유심론이나 무사(無事)·위순(違順) 등 문태준 시에서 면면히 이어진 불교적 세계관, 예스러워 오히려 참신한 시어들도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만 변화가 감지된다.

“사투리나 의성어는 밖에 나가서 독해가 안 되더군요. 우리 말을 다듬고 세공하는 걸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어야하지 않을까….” 시집『가재미』가 일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고민은 깊어졌다.

“극도로 예민한 감각을 사용하거나, 선(禪)적인 직관을 보여줄 수도 있겠죠.”

새로이 나올 시는 여태 알던 모습과 딴판일지도 모른다. 그런 고민에선지, 아버지 걱정 때문인지, 혹은 간밤에 마신 술 탓인지, 시인의 얼굴엔 길게 그늘이 졌다.

글=이경희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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