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예술통해 영적경지 이를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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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현대 미술이 중국 미술에 이은 새로운 투자처로 부상하고 있다. 소더비의 경우 지난해 5월 런던서 열린 인도 현대미술 경매 낙찰총액이 57억원이었던 데 이어 올해 5월 같은 경매에선 85억원 어치의 인도 현대미술품이 팔렸다. 국내의 신생 화랑들도 인도 젊은 작가들의 전시를 다투어 열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인도 미술을 ‘발견’하기 훨씬 전부터 세계 미술계에 뚜렷한 두각을 나타낸 인도 작가가 있다.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Anish Kapoor·54)다. 살짝 찌그러뜨린 스테인리스 스틸판, 반질거리는 플라스틱 반구 등 크고 단순한 그의 조각품들은 지구의 균열인 양 심원한 느낌을 준다. 종교와 기술, 동양과 서양, 물질과 정신의 경계에 서 있는 작가라는 평을 듣는 이유이기도 하다. 런던 남쪽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아니쉬 카푸어는 런던 외곽의 창고 같은 건물 안에서 작품의 마무리에 바빴다. 한 골목에 죽 늘어선 3개의 대형 창고 건물이 그의 작업실이다. 20명의 조수들이 그의 플라스틱 조각에 사포질하며 광을 내고 있었다. 만지고 싶도록 반들거려야 그의 작품이다. 관능미와 심오함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는 게 아니쉬 조각품의 특징이다. 작업실 벽엔 커다란 깔대기 모양으로 쑥 빨려들어간 빨간 플라스틱 조형물이, 한쪽 구석엔 살짝 찌그러져 들어간 초록색 스테인레스 스틸 판이 세워져 있었다.

런던 남쪽의 공장같은 작업실에서 아니쉬 카푸어는 20명의 조수들을 거느리고 공공 조형물의 모형을 만들거나, 세계 곳곳에 전시될 작품을 다듬는다. [런던= 권근영 기자]

아니쉬는 “나는 뭔가 보여주려(showing)고 하지 않는다. 나는 조각을 통해 사물이 발견되길(discovered) 바란다. 나는 조각가로서 새로운 것을 찾는데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조각의 역사는 물질의 역사입니다. 물질 안에는 비물질적인(non-material) 속성도 있죠. 사람들은 바로 이 부분을 영적(spiritual)이라고 합니다. 인간인 우리가 예술을 통해 영적인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의 대표작은 2006년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 파크에 세운 ‘구름문(cloud gate)’. 거대한 물방울이 지구상에 뚝 떨어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이다. 거울처럼 반들거리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지름 20m의 초대형 조형물이다. 위에서 보면 도넛 모양으로 가운데가 뚫려 있는데, 옆에서는 콩을 닮은 모양이라 ‘The Bean’이라고도 불린다. 공간을 재발견하는 속성을 띤 것이 그의 작품이다. 때문에 공공조형물 설치 의뢰를 많이 받는다. 올 한 해만 영국 곳곳에 5개의 환경조각을 설치한다. 아니쉬는 “조각의 문제는 공간의 문제이기도 하다. 새로운 예술을 위해선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조각품뿐 아니라 그게 자리잡고 있는 공간 자체도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은 개인사나 사회적 상황을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것, 정신적인 것을 다룬다. 그는 “일반적으로 작가는 두 종류다. 자신을 돌아보고 자전적 작품을 만드는 이가 그 하나다. 나는 다르다. 내 얘기를 하기보다는 더 보편적인 것을 추구한다. 그래서 내 작품은 나보다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왜 예술을 하느냐고? 나 자신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다. 진심이다”라고 강조했다.

1954년 인도 뭄바이에서 태어난 그는 19세에 런던으로 이주, 78년 런던의 첼시 스쿨 오브 아트를 졸업했다. 부모는 “먹고 살기 어려울 것”이라며 아들이 예술가가 되는 걸 반대했었다. 그러나 그는 82년 런던의 리슨 갤러리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84년 뉴욕의 바바라 글래드스턴 갤러리에서 전시를 여는 등 국제적으로 활발히 활동했고, 90년엔 영국 대표 작가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이듬해엔 터너상을 수상했다. 런던에서 시작, 세계 미술을 주름잡고 있는 데미언 허스트나 마크 퀸 등 ‘젊은 영국 예술가들(yBa)’보다 10년쯤 앞선 세대다. yBa의 충격요법과는 정반대되는 부드러움, 심오함을 선호하는 아니쉬는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를 진작에 확립했다.

인도를 떠난 지 30년이 넘었고, 인도에서 전시해 본 일도 없지만 그 역시도 최근의 인도 현대 미술 붐에 환호한다. “인도 인구가 10억이 넘는데 그 많은 사람 중 훌륭한 작가가 없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라며. 그러나 일찌감치 세계를 무대로 자기 자리를 확보해 온 선배답게 “시장은 인도 미술을 이제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젊은 작가들이 작품성에 대한 욕심보다 돈이나 야심을 먼저 갖는다면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런던=권근영 기자


‘동양적’평가 거부 공통점
이우환과 아니쉬 카푸어

“조각은 공간의 놀이터다. 인간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던 근대가 붕괴하기 시작한 오늘날, 아니쉬 카푸어는 조각으로 시각에 새로운 구원을 가져다주고 있다.”

1997년 이우환(사진)은 이렇게 아니쉬 카푸어에 대한 평문을 맺었다. 두 사람은 자전적 표현의 세계를 훨씬 벗어나 인간의 살아가는 근본, 세계와 물질과의 관계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 작가다.

각각 한국과 인도라는 오랜 역사의 동양 출신이라 이처럼 심원한 세계를 관조한다는 평도 나온다. 두 사람 모두 ‘동양적’이라고 선 긋는 것을 싫어한다는 점도 비슷하다.

한국 출신으로 일본서 먼저 인정받은 뒤 유럽에서 활동한 이우환이나, 인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영국에서 교육받고 활동하는 아니쉬 카푸어나 경계인이기도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말한다. “나는 동양을 대표하는 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저 이우환일 뿐이다.”“나는 인도인이다. 허나 인도에서 전시한 적이 없다. 지난 20년간 나는 인도에서 서구 예술가로 인식돼 왔다. 반면 영국에서 나는 가끔 영국 작가로 간주되지만 대개 인도 작가의 범주에 든다. 그러나 나는 영국 예술가도, 인도 예술가도 아닌 예술가일 뿐이다”라고.

이우환은 2003년 가을 로댕갤러리·호암갤러리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연 뒤 국내 활동은 거의 접다시피 했다.

같은 해 아니쉬 카푸어는 서울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우환은 올 9월 뉴욕 굴지의 화랑 페이스윌든스타인(Pacewildenstein) 갤러리에서 전시를 연다. 그로서는 미국서 처음 여는 개인전이다.

아니쉬 카푸어는 같은 달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서 5년만의 한국 개인전을 연다.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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