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의 원천은 자원이 아니라 ‘생각’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0호 35면

‘생각이 에너지다’라는 광고가 있어 눈길을 끈다. 인상적인 영상과 세련된 배경음악도 좋지만 무엇보다 발상이 신선하다. 우리가 진출한 세계 곳곳을 우리의 공장이라고 한다. 도서관은 지식의 유전이며, 거리는 창조의 유전이기에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를 대담하게도 ‘산유국’이라 지칭한다. 물질과 공간에 제한되지 않는 사고의 자유로움을 창의력의 산물이자 자원이라고 말하는 사고의 전환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필자도 자원개발에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원명은 바로 ‘세포주(細胞株·cell line)’다. 세포주는 시험관 속에서 계속 증식이 가능하도록 순수 배양된 세포를 말한다. 새로 개발된 항암제의 효능 실험 등 여러 가지 연구에 활용되는데, 1981년 전임강사였던 필자는 국내외에 널리 활용되고 있는 국산 세포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세포주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실험기기도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필자를 비롯한 연구팀은 우리나라의 암환자들로부터 여러 종류의 세포주를 개발하면 많은 연구자가 함께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처음 실험을 시작한 지 수년 만에 위암 세포주 수립을 시작으로 대장암·간암·자궁암·뇌암·신장암·췌장암·담도암·갑상선암·유방암·폐암 등 다양한 세포주를 수립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수립된 세포주들은 배양 후 조그만 유리병에 나뉘어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 탱크 속에 장기간 보관된다. 필자의 실험실에서는 지금까지 200여 종류의 암 세포주를 수립하였으며, 바이러스를 이용하여 계속 자라게 만든 림프구 세포주 140여 종도 만들어 냈다.

이렇게 개발한 세포주들은 필자가 1991년 서울대암연구소 내에 설립한 한국세포주연구재단의 한국세포주은행을 통해 국내외 연구자들에게 분양되고 있다. 그간 국내외 연구기관에 분양된 3만여 병의 세포주는 1만여 개에 달하는 연구 과제에 활용되었다. 특히 위암 세포주를 비롯해 간암·난소암 및 담도암 세포주들은 외국에 수출되고 있다.
이런 국산 세포주를 활용하면 가장 좋은 점은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연구자가 외국에서 세포주를 구입하려면 1~2개월의 시간과 최고 130만원 정도의 경비가 소요되지만 한국세포주은행에서는 불과 1~2주 내에 9만원의 수수료만 지불하면 된다. 반대로 외국에서 한국세포주은행에 세포주를 요청할 때는 병당 300달러를 지불하게끔 하고 있다.

오랜 기간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한국세포주은행은 세계 5대 세포주 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한국세포주연구재단은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로부터 국제특허 미생물 기탁기관으로 지정되어 관련 분야 국제특허 출원에 관한 업무를 수행하며 글로벌 사회의 지적소유권 보호 및 협력 증진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이쯤에서 ‘자원강국’의 개념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자원을 얼마나 보유했느냐가 아니라 새로운 자원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천기술을 확보했느냐가 국가경쟁력을 좌우한다. 이른바 ‘기술패권주의’에 자원강국의 미래가 달려 있는 것이다.

특히 산업혁명 이후 성장위주의 문명발전으로 자연자원이 심각하게 훼손·고갈되고 오염돼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지금, 우리는 ‘자원개발’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안 그래도 병들어 있는 지구를 더 파 내려갈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우리의 자원이 되게끔 하는 일이 필요하다. 요컨대 ‘생각’을 ‘에너지화’하자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세포주 개발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위에는 개발의 손길을 기다리는 유·무형의 자원이 무수히 많다. 이들 잠재적 자원에 생명을 불어넣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일, 이것이 바로 창조적 과학기술의 힘이자 역할이라고 본다. 생각을 바꾸면 에너지가 보인다고 했던가. 독창적 기술을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의 자원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좁은 국토에 가진 것 없는’ 우리나라가 이루어야 할 미래 자원강국의 꿈이 아니겠는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