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카운슬러, 학교 ‘킹카’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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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존 폴  출연:안톤 옐친·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캣 데닝스  장르:드라마·코미디  등급:15세 관람가

 10대 성장기란 누구나 한 번쯤 낮은 포복으로 통과해야 하는 진흙 구덩이인 것 같다. 나중에 돌아보면 그다지 위험한 일도, 영 못 견딜 일도 아니지만 겪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체험이라는 점에서다. ‘찰리 바틀렛’은 이런 10대의 풍경을 유쾌하게 그려낸 성장영화다.

주인공 찰리 바틀렛(안톤 옐친)은 전형적인 문제아와는 달라도 다분히 문제적인 고교생이다. 겉보기에는 머리 좋고 예의 바른 부잣집 아들인데, 명문 사립고교에서 모종의 사건을 일으키고 퇴학당한다. 새로 전학한 공립학교에 등교하는 첫날, 찰리는 예전 학교의 정장 교복을 입고 나타난다. 제멋대로 차려입은 공립학교 아이들 틈에서 단연 이질적인 차림새다. 따돌림당하지 않을까 하는 관객의 예감대로 찰리는 첫날부터 학교의 싸움꾼 머피(타일러 힐턴)에게서 이유 없는 주먹질을 당한다.

놀랍게도 찰리는 자신만의 재주를 발휘하며 불안해 보이던 전학생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정신과에서 받아 온 알약에서 사람을 흥분시키는 부작용을 경험하고는 남은 알약을 아이들의 파티용으로 팔아 돈을 벌게 된 것이다.

내친김에 찰리는 학교 화장실에 사설 상담소를 차려 본격적으로 무허가 정신과 의사 노릇을 한다. 찰리는 각각의 증세를 가장해 정신과에서 알약을 받아다가 임의로 처방해 아이들에게 나눠 준다. 그 결과 찰리는 점차 학교의 인기 스타로 부상하고, 매력적인 여학생 수전 가드너(캣 데닝스)와도 사귀게 된다. 그런데 캣의 아버지는 다름 아닌 이 학교의 교장 가드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다. 찰리는 학교 측의 요주의 대상이 되고, 무허가 상담실은 뜻밖의 사건으로 위기를 맞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10대 성장영화의 전형적인 주인공과는 사뭇 다른 찰리의 독특한 개성이다. 아이들은 교사나 부모와는 결코 나누지 않을 법한 고민을 또래 찰리에게는 서슴없이 털어놓고, 찰리는 짐짓 어른스러우면서도 또래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해법을 들려준다.

자신의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는 찰리의 방식 역시 영화 밖에서의 실현 가능성을 떠나 꽤나 유쾌하다. 찰리는 등교 첫날 자신을 두들겨 팬 머피를 무허가 상담소의 동업자로 끌어들인다. 나아가 머피가 여러 아이를 때리면서 찍어 놓은 동영상을 CD로 구워 아이들에게 파는 사업까지 벌인다.

이렇게 애늙은이처럼 보이는 찰리 역시 짐작대로 어른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난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일 아닐지 몰라도 찰리에게는 쉽게 말하기 힘든 자신만의 문제가 있다. 그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아이들처럼 찰리도 성장기의 10대일 따름이다. 또래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는 데 목을 매는 찰리의 모습 역시 지극히 10대다운 욕망을 보여 준다. 이런 성장통이 어른이라고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중구난방 제멋대로인 이 학교를 이끌고 있는 가드너 교장 역시 그만의 문제로 고민 중이다.

이들의 성장통은 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진흙탕의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마다 자신의 존재에 불안감을 품고 있던 아이들이 스스로의 소질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이 진흙탕에는 서광이 비친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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