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논단>규제 풀어야 건설업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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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부실공사,비자금,부도….」 요즘은 건설업 하면 으레 이런 단어들을 떠올리게 한다.여기에다 미분양주택이 15만채나 누적되면서 많은 주택건설업체들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시장경제아래서 기업의 도산은 방만한 경영등 해당업체에 귀책사유가 있음이 분명하다.또 건설 업의 불황을 부동산가격의 장기적인 안정에 따른 불가피한 구조조정 과정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간과해서 안될 것은 그동안 건설업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시장기능을 크게 저해해왔으며,그 결과 미분양 사태등 현재와 같은 건설업의 어려움을 초래했다는 점이다.
우선 수도권이나 대도시 집중을 막겠다고 전국에 골고루 집을 짓게 했다.
사겠다는 사람이 없는 곳에 지은 집이 팔릴 리 없다.또 가격도 묶어 상품의 다양화는 원천봉쇄돼 있다.뿐만 아니라 집의 크기도 「몇평,몇평」으로 정해 짓게 한다 .
결국 원하는 곳에 원하는 크기,원하는 질의 집이 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팔리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경기가 좋아진다고 해도 미분양된 15만채가 다 소화되기는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미분양 아파트 해소를 위해 임대주택사업자 기준을 2가구까지 내려주는 방안도 검토됐으나 투기가 두려워 무산됐다.
지난해 11월 건설교통부가 발표한 「주택시장 안정대책」은 4개도의 중대형 아파트 분양가 자율화 등 부분적인 규제완화 대책을 포함하고 있으나 근본적인 것은 못되는,그야말로 일부 완화에지나지 않았다.
지난 1월의 「건설시장 안정대책」도 재정경제원의 물가논리에 밀려 대부분 「검토.추진」정도의 수준에 머물렀다.
정부는 아직도 토지에 대한 투기가 겁나,물가가 오를 것이 두려워,또 서민보호라는 명분에 매달려 이런 사태를 가져온 근본적인 규제를 풀지 못한채 주저하고 있다.
정부가 규제를 틀어쥐고 주저하는 사이 왜곡된 시장기능으로 인해 아직 주택보급률이 80%정도밖에 안되는 나라에서 수만채의 집이 남아돌고,건설업의 경쟁력은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건설업과관련된 규제는 무수히 많다.
비업무용 부동산 판정과 토지초과이득세 부과는 수요가 없는 빌딩과 주택들이 지어지게 했으며,눈가림식의 임시 건물들을 늘어나게 해 자원 낭비와 함께 적정한 토지이용을 저해해왔다.
자금면에서도 여러가지 규제를 받는다.「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여신심사에서 불리하게 평점을 받을뿐 아니라 일률적으로 1% 가산금리가 적용되며,회사채발행.어음재할인 등 각 단계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또 건설업은 사업시행 계획에서부터 착공.준공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법령뿐 아니라 내용도 모호한 「심의」라는 과정을 통한 규제도 받는다.
97년에는 공공공사를 포함한 건설시장이 전면 개방된다.
이미 늦은 감이 있지만 시장이 개방된 후 외부의 힘에 의해 부랴부랴 제도를 고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건설업의 경쟁력 향상과 시장기능 회복을 위한 제도개선을 발빠르게 추진해야 할 때다.
신혜경(본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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