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계 정글 제패한 ‘완소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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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석-나경은, 행복한 입맞춤
6일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웨딩마치를 울리는 개그맨 유재석과 아나운서 나경은 커플이 결혼식 전 기자회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스타들은 대부분 ‘자고 일어나 보니’ 스타가 되어 있더라고 말한다. 대개 그들의 성공은 하나하나 계단을 밟아 이뤄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갑자기 무명 인사에서 대중의 영웅으로 변신하는 게 스타의 길이다.하지만 6일 나경은 MBC 아나운서와 결혼하는 MC 유재석에겐 이런 말들이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 왔고, 천천히 인정받았다. 최근 유재석이 진행하는 KBS-2TV ‘해피투게더’에 선배 김한국과 김미화가 출연했다. 여기서 김한국은 유재석을 향해 뜨끔한 코멘트를 던졌다. “안 될 줄 알았는데 됐어. 참 신기해.”아무리 후배라도 너무 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올 만한 말이지만 유재석의 성장사를 TV를 통해 본 시청자라면 은근히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를 언급하자면 KBS가 주최한 1991년 ‘대학 개그제’를 빼고 얘기할 수가 없다.

그때 입상자들은 지금 봐도 화려하기 짝이 없다. 한국 개그계 최초로 이적 파문을 일으켰던 김국진·김용만·박수홍·김수용 등 ‘감자꼴 4인방’을 비롯해 남희석·양원경 등이 동기생이 된 것이다. 서울예대 1학년이던 만 19세의 유재석은 지금은 탤런트 임채원의 남편으로 유명한 최승경과 짝을 이뤄 이 대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당시 유재석이 스타가 되기엔 다른 입상자들의 그늘이 너무 짙었다.

더구나 현재 ‘순발력의 제왕’으로 불리는 그가 초년병 시절 연출자들로부터 ‘콩트는 되는데 토크가 안 된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그의 성장을 지켜본 김석윤(영화 ‘올드 미스 다이어리’ 감독) KBS PD도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성의와 잠재력을 높이 평가해 계속 기회를 줬지만 대중의 반응은 그리 빨리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서세원 쇼’의 ‘토크박스’에 출연한 유재석을 봤는데 약점으로 지적되던 토크가 일취월장해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겠더라”고 회상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겐 그의 지나치게 소심한 성격이 불가사의다. 동갑내기 친구인 이휘재에게도 “결혼식 사회를 봐 달라”는 말을 직접 하지 못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요청하는 게 그의 스타일이다. 물론 이런 소심함을 ‘세심함’이란 말로 바꾸면 그의 강점이 된다.

유재석은 본래 스트라이커로 나서 득점왕이 되기보단 어시스트왕이 천직인 사람이었다. 그가 스타가 되기 전에 그와 함께 손발을 맞추던 MC들이 그를 앞질러 스타덤에 올랐다. 강호동이나 이휘재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런 그였기에 여섯 명의 ‘무한도전’ 팀원들로부터 자신에게 없는 각기 다른 개성을 뽑아내 모두 스타로 만드는 것이 가능했다는 평가다.

그의 결혼은 과연 대한민국 연예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잘나가던 스타 MC가 결혼하면서 인기가 내리막을 걸은 예는 꽤 있다. 탁재훈과 남희석이 좋은 예다. 강호동이나 김용만처럼 결혼 후에 더욱 주목받은 경우도 있지만 유독 여성 팬이 많은 유재석은 이들과는 좀 달라 보인다. 그럼 유재석에게도 어느 정도 슬럼프가 있을까?

답은 ‘유재석에게 달렸다’다. 남희석과 탁재훈은 결혼 직후 보다 점잖은 이미지로의 변신을 꾀했고, 시청자는 갑작스레 바뀐 이들의 모습에 적응하지 못했다. 유재석의 경우도 결혼 뒤의 급격한 이미지 변신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유재석이 지금까지 방송에서 보여줬듯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몸으로 직접 부딪치며’ ‘타인을 배려하는 진행 태도’를 유지할 경우 그가 결혼으로 인해 추락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현재 강호동과 예능계 지존을 다투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유재석은 지난해에 비해 다소 어려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가 SBS-TV ‘일요일이 좋다’에서 내놓은 새 코너 ‘패밀리가 떴다’는 경쟁 프로그램인 KBS-2TV ‘해피선데이’ 팀이 내세우고 있는 강호동의 ‘1박2일’에 의해 강력한 견제를 당하고 있다.

MBC-TV ‘놀러와’는 KBS-2TV ‘미녀들의 수다’에 재역전을 당했고, MBC-TV ‘무한도전’은 더 이상의 성장동력이 있는지를 의심받는 중이다. 어쩌면 결혼 뒤가 문제가 아니라 지금이 위기인데, 오히려 결혼을 통한 화제와 관심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송원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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