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책 읽기] 오바마·상원의원 도마위에 … 미국사회 이면 드러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사기(Fleeced)
딕 모리스, 아일린 맥건 지음
하퍼스콜린, 337쪽, 26.95 달러

전 세계적으로 부는 ‘오바마 열풍’ 속에서 그를 협잡꾼으로 몰아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 있다. 미국의 정치 전략가로 명성을 날렸던 딕 모리스와 그의 아내 아일린 맥건이 쓴 『사기(Fleeced)』다.

모리스는 이 책을 통해 미국 사회의 실상을 발가벗겼다. 그것도 웅변조의 주장이 아닌, 수백 개의 또렷한 사실들을 제시하며 미국 사회의 모순을 낱낱이 파헤친다.

이런 식이다. 미국이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석방해 준 테러리스트 425명 중 절반 이상이 다시 전장으로 돌아와 미군들과 싸우고 있다. 버락 오바마가 책임 있는 재정정책을 펴겠다면서 향후 10년간 1조 달러의 세금을 추가로 걷으려 한다. 그러면서 말로는 세금을 깎아준다고 한다. 미국의 전체 연금 중 4분의 1 이상이 이란·시리아·북한·수단 등 적국들을 돕는 기업들에 투자하고 있다. 상원의원들은 아무것도 안 하면서 16만5000달러의 봉급 수표는 꼭 챙긴다.

이어 한심한 경제 쪽 얘기가 뒤를 잇는다 . 일반인들이 35%의 재산세를 내는데 반해 큰 돈을 버는 헷지 펀드 직원들은 15%밖에 내지 않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회사인 컨트리와이드는 지난해 3분기 12억 달러의 손실을 내고도 이 회사 전 CEO인 안젤로 모틸로는 190만 달러의 봉급에다 2000만 달러 상당의 주식을 챙겼다. 이념 문제도 나온다. 오바마가 대권을 잡으면 이념적인 평등이란 미명 아래 보수성향의 라디오 프로들이 죄다 서리를 맞게 된다.

요컨대 모리스 부부는 정부, 은행, 워싱턴 로비회사, 헷지 펀드 등에 의해 미국인들이 어떤 식으로 당하고 있고, 앞으로 당하게 될지를 고발한 것이다. 그의 화살은 주로 다음번 집권이 유력시되는 민주당 쪽으로 향해 있다. 그는 심지어 이렇게 얘기한다. “다음번 민주당이 당선되면 국민들을 껍질째 홀라당 벗겨 먹으려 할 테니 티셔츠를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책 제목인 『사기(Fleeced)』도 ‘양의 가죽을 벗겨먹는다’는 어원에서 나왔다.

저자는 물론 나름대로 해법도 제시했다. 그는 인터넷을 통해 여러 분야, 특히 정치인들을 감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상원들의 매일 일정을 인터넷에서 올리게 함으로써 먹고 노는 행태를 방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쩜 트집잡기에 불과하단 얘기도 들을 법함에도, 이 책은 발매 3일 만에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1위로 올랐다. 쉽게 들을 수 없으면서도 가슴에 확 와 닿는 적나라한 내용을 담아냈기 때문일 게다. 때문에 이 책을 잡으면 지금까지 몰랐던 여러 개의 진실을 깨닫게 된다.

더불어 저자 딕 모리스의 이름값도 한 몫 했을 게 틀림없다. 빌 클린턴의 최측근 선거 참모로 꼽혔던 그는 그간 『신(新) 군주론』, 『파워게임의 법칙』등 쓰는 책마다 베스트 셀러가 됐다. 위선적인 이면을 통해 미국이란 자본주의 사회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무척이나 요긴한 책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딕 모리스

빌 클린턴의 20년 정치 참모. 1996년 성추문으로 물러나기 전까지 클린턴 대선운동본부의 핵심으로 일하며 그의 최측근으로 꼽혔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오른팔이던 칼 로브와 함께 현존하는 미국 정계의 대표적인 정치전략가로 통한다. 지금은 폭스뉴스 해설가 등으로 활약 중이다.

▶ 중앙일보 라이프스타일 섹션 '레인보우' 홈 가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