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Blog] ‘이상한 놈, 위험한 놈’도 있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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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강철중’이 개봉 2주 만에 관객수 300만 명을 바라보며 순항 중입니다. 한국영화로는 2월 ‘추격자’ 이후 모처럼의 희소식입니다. 숫자도 숫자지만 흥행을 체감하는 것은 주변의 말입니다. 영화와 관계없는 지인들이 여럿 관람 소감을 들려줄 정도면, 흥행작이 맞지요. ‘강철중’을 본 사람들 말이, 1편 격인 ‘공공의 적’ 시절보다 강철중이 덜 독해졌다고들 합니다.

‘강철중’ 개봉 직전 ‘공공의 적’을 다시 봤는데, 역시 참 독하기는 독하더군요. 범인들에게 빼앗은 마약을 빼돌리고, 그 때문에 동료 형사가 자살까지 한 마당에 자기 혼자 한탕 할 생각을 하는 형사라니, 이토록 위험한 인물이 주류영화의 주인공이었다는 게 새삼 놀라웠습니다. 그만큼 독한 인물이었으니, 6년이 지나도록 기억되나 싶기도 했고요. 고 김기영 감독(1922∼98)의 ‘이어도’(77년·사진)를 보고도 퍽 놀랐습니다. 지난해 충무로영화제에서 처음 봤는데, 해양오염 문제를 다룬 점이나 죽은 시체와 산 인간의 관계를 묘사한 장면이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요즘 영화처럼 세공이 매끈하지는 않아도 에너지가 뚜렷합니다. 그의 10주기 기념 영화제가 지난달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데 이어, 최근 DVD가 출시됐습니다. 모든 작품이 아니라 네 편뿐이지만 ‘고려장’(63년), ‘충녀’(72년), ‘육체의 약속’(75년)과 함께 ‘이어도’가 있어 반가웠습니다. ‘이어도’는 당시 제대로 개봉을 못 했다고 하니, 요즘의 관객들이 더 유리한 듯합니다. 김 감독은 영화도 그랬지만, 평소 사는 모습도 좀 남달랐던 모양입니다. 앞서 『전설의 낙인:영화감독 김기영』이라는 책도 출간됐는데, 다소 기인(奇人)같은 생전의 일화들이 흥미롭습니다.

돌아보면 자기 시대에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았을망정 창작분야에서 발전을 이끈 별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당대에는 이상한 사람, 때로는 위험한 사람 취급도 받았을 테지만요. 한국영화계가 발전동력을 잃고 비틀거린다는 진단이 나오는 요즘, 신인들의 부진도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나홍진 감독 같은 대형 신인도 있습니다만, 해마다 한국영화 개봉 편수의 절반쯤이 신인 감독의 손에 만들어지는 것에 비하면 그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칩니다. 최근 몇 년 새 특히 그랬죠. 자기 색깔을 담기보다 제작사 기획에 맞춰 타협해 만든 듯한 데뷔작이 많았지요. 제작사도 보는 눈이 있으니까, 흥행 안정을 겨냥해 그리 됐을 텐데, 결과적으로 관객을 낮춰본 셈입니다. 개봉에 앞서 미리 유행어가 된 듯한 영화 ‘놈놈놈’의 제목을 또 빌려볼까요. ‘이상한 놈’이나 때론 ‘위험한 놈’도 충무로를 어슬렁거렸으면 합니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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