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내 생각은…

한반도엔 세계자연유산 왜 없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자연유산은 유네스코가 '세계유산협약'에 따라 지정하는, 전 세계적으로 보전가치가 높은 지역을 말한다. 자연의 진화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지역, 경관이 수려한 지역, 독특한 지질학적 특징이 있는 지역, 희귀 동식물의 서식처 등이 지정대상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현재 149개의 자연유산이 지정돼 있으나, 남한과 북한에는 아직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하나도 없다. 북한의 백두산과 구월산, 남한의 설악산과 제주도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돼 있을 뿐이다.

생물권 보전지역은 유네스코 프로그램의 하나로 지정되나 자연유산은 국제협약에 따라 등재되므로 그 위상이 훨씬 높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자연유산 지정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없음은 유감이다.

몇년 전 정부는 설악산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기 위해 신청서류를 유네스코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설악산만으로는 세계자연유산으로서의 자격에 미달한다는 국제전문가의 평가가 내려지자 그 요청을 철회했다. 그 전문가는 "금강산과 설악산을 연계하면 자격이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개발논리에 묻혀서인지 현재까지 설악산과 금강산 일대를 연계해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은 가시화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금강산 자연유산지역 지정에 대한 제안이 금강산 관광종합개발계획의 수립에 참여한 세계관광기구(WTO)에서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설악산에서 비무장지대(DMZ)를 거쳐 금강산에 이르는 지역을 합할 경우 세계자연유산으로서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지역들은 한반도 백두대간의 허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국토 생태 녹지축의 중추기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산양을 비롯한 희귀 동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기암절벽 등 독특한 지질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사계절이 변화하는 수려한 경관은 세계인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DMZ에는 지난 50년간 인간의 간섭 없이 형성돼 온 여러 유형의 습지와 사구가 있다. 생물학적 형성과정의 측면에서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게 평가되는 것들이다.

나는 이곳 독일에 체류하면서 베를린 동남쪽으로 100㎞ 정도 떨어져 있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이면서 세계자연유산 지역인 슈프레발트(Spreewald)라는 곳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원래 자연원시림과 습지였는데 인간의 정주가 시작되고 수로 확보 등 인간에 의한 토지이용으로 인해 새로운 자연문화경관을 형성하게 된 지역이다. 매년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어 관광명소가 됐다고 한다. 자연보호, 지속가능한 토지이용 및 지역경제, 생태관광 실현을 위한 모델지역이 된 것이다.

우리는 왜 우리의 좋은 자연자원을 더 현명하게 관리하지 못하는 것일까. 자연은 한번 파괴되면 완전한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현행 제도 속에서 비록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친다고 하지만 광역적인 보전 위주의 환경친화적 토지이용 계획이 사전에 수립되지 않을 경우 자연유산 지정대상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게 될 위험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부문별.지역별 계획에 앞서 설악산-DMZ-금강산을 통합하는 밑그림이 될 환경.생태.관리계획을 국토환경 보전계획의 일환으로 시급히 수립하기 바란다. 더 늦기 전에 세계자연유산의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관리체제를 갖추고, 남북 협력하에 신청절차를 밟아 나가도록 해야 한다.

식목의 계절을 맞아 나무 심는 일도 중요하지만 가칭 '설악산-DMZ-금강산 자연유산' 지정을 통해 우리 한반도가 가지고 있는 자연자산의 가치를 전 세계인에게 알리고 인정받아야 한다.

김귀곤 서울대 교수. 세계습지학회 북아시아 회장<독일 베를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