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물갈이 칼빼든 DJ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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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말뚝을 박아도 당선된다』는 말이 유행했다.13대 당시 김대중(金大中)국민회의총재가 이끌던 평민당의 「황색돌풍」이후 호남지역의 선거결과를 꼬집은 얘기다.
물론 지난 14대 선거때는 일부 예외도 있었지만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金총재의 영향력은 여전함을 입증했다.
그런데 金총재가 칼을 빼들었다.선거를 통해 현역의원이 교체되는 것이 어려운 현실을 인정,직접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金총재는 4일 한 인터뷰에서 호남 물갈이 방침에 대해 『어느정도는 해야 되지 않느냐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金총재는 6.27 지방선거때부터 호남 물갈이 필요성을 강조했었다.광주를 방문했을 때 신기하(辛基夏)총무에게 『辛총무는 해당이 안 되겠지만 지역에서 여론이 안좋은 의원들이 있다』면서 상당수 물갈이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신당 창당 과정에서도 당시 민주당의 계파별 나눠먹기의 병폐를지적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호남의원들을 물갈이하라는 지역 여론을 수용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었다.
이 때문에 살명부(殺命簿)가 나도는등 호남의원들을 불안에 몰아넣었고,이 명단에 포함된 일부 의원이 국민회의 창당에 반기(反旗)를 들기까지 했다.그러나 창당 초기 1석이 아쉬운 형편에서 金총재는 일단 물갈이를 부인했다.당시는 정기국 회마저 앞에놓여있어 물갈이 문제를 거론할 처지는 아니었다.물갈이는 2월께로 미뤄졌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金총재가 이 문제를 앞당겨 들고나온 것은 여러가지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신한국당(가칭)의 개혁중심 물갈이에 대응해 외부인사를 끌어올 여지를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국민회의는 수도권에서 상당수 인사를 새로 영입했지만 현역의원들은 모두 그대로 둠으로써신한국당의 물갈이에 밀려 퇴색해버렸다.그 인물이 그 인물이라는비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현역에 대한 교체가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더군다나 물갈이를 위해서는 사전 조사를 해야 하는데 어차피 이 과정에서 당사자들에게 알려질 수밖에 없다.
金총재의 한 측근은 물갈이는 현지 여론을 가장 중시할 것이라고 말했다.金총재의 최종 목표는 97년 대권이다.때문에 현지에서 거부하고 있는 사람을 내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다.
金총재는 『호남지방 여론을 신중히 살필 것』이라고 말했다.조직책 선정과정에서 처럼 전화여론조사와 현지 실사를 벌이겠다는 말이다. 또 다른 기준은 의정활동과 도덕성이라고 이 측근은 전했다.金총재는 『아직 방침을 못세우고 있다』고 말했다.그러나 지방선거 과정에서 일부 의원들의 구체적인 이름까지 지적했었다.
민주당 안에서 계파갈등을 보일 때 충성도가 약했던 의원들이다.이들의 경우 최소한 실사 대상에서 빠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한 측근은 상당수 다선(多選)의원이 현지 여론이 악화돼 있다고 말해 물갈이 폭은 의외로 대폭이 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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