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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걸린 후쿠다 외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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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정권이 최근 안정을 되찾고 본격적으로 외교에 매진하고 있다. 후쿠다 정권은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대패한 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급작스러운 사임으로 탄생했다. 그동안 야당이 참의원의 과반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후쿠다 정권은 마음대로 법률을 처리할 수가 없었다. 최대 야당인 민주당의 찬성 없이는 일본은행 총재조차 임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달 들어 정기국회가 끝나면서 후쿠다 총리는 골치아픈 내정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외교에 전념할 수 있게 됐다.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힘든 일은 계속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야당이 지난주 참의원에서 ‘총리 문책 결의’를 통과시켰는데도 총리가 이를 무시하고 담담히 정권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법적으로 참의원의 ‘문책 결의’는 중의원의 ‘총리 불신임 결의’처럼 사퇴를 강요하는 구속력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총리가 이를 무시하더라도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중요한 사실은 이번 총리 문책 결의안 통과 직후 실시된 언론사들의 여론조사 결과 내각 지지율이 20%에서 25% 수준으로 조금 올라갔다는 점이다. 여전히 낮은 지지율이지만 하락 추세는 멈췄다고 할 수 있다. 여론조사를 할 때마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는 벗어난 것이다. 후쿠다 총리가 ‘문책 결의’를 무시할 수 있다는 사실은 현 중의원 임기가 끝나는 내년 9월까지 정권을 유지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총리는 원하면 언제든 중의원을 해산할 수 있지만 여당이 중의원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후쿠다 총리는 드디어 자신의 특기인 외교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앞으로 닥칠 외교 과제가 쉬운 것은 아니다. 7월 7일 홋카이도 도야코에서 열리는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가 대표적이다. 이 회의에서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것인가 ^세계적인 원유·곡물가 급등 문제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세계 경제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 논의될 예정이다. 어느 것 하나도 구체적인 성과를 내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하지만 G8 정상회의나 이와 관련된 다른 회의는 즉시 문제해결로 이어지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자리는 아니다. 장기적으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향을 마련하면 된다.

후쿠다 정권은 국내 정치가 혼란한 와중에서도 이에 대비해 상당한 준비를 해왔다. 후쿠다 총리는 지구온난화 문제와 관련해 1월 말 다보스 포럼에서 일본의 기본 구상을 제시했다. 이달 9일에는 온실가스를 2020년까지 지금의 14%, 2050년까지 60~80% 삭감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선언했다. 후쿠다 총리가 발표한 ‘저탄소혁명’ 목표는 G8 정상회의 회원국으로서 매우 합당한 조치다. 또한 후쿠다 총리는 교토의정서에 가입하지 않은 미국·중국·인도 등의 국가들이 참가할 수 있는 논의의 틀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는데 이는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다.

물론 G8 정상회의만이 외교는 아니다. 일본과 중국의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개발이 이뤄지면 일본과 중국 관계는 한층 안정될 것이다. 북한과의 납치문제는 여전히 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지만 이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거둔 외교적 성과는 후쿠다 정권의 대북 외교에서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후쿠다 정권이 국내정치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아온 일본인 대다수는 후쿠다 외교에 그다지 기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쿠다 정권은 일본인들이 기대한 것 이상으로 외교 분야에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다나카 아키히코
정리=박소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