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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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맨발로도 능히 다닐 수 있을만큼 청결한 도시 코펜하겐.청동지붕과 첨탑,붉은 벽돌집이 줄지어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시청 청사가 눈을 사로잡는다.20세기초에지어진 것이지만 중세 덴마크 양식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취향을조화시킨 건축물로 높이 106의 시계탑도 돋보인다.
오전 내내 침대에서 껴안고 지내다 오후의 거리로 산책나갔다.
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사야 한다고 해서 따라나선 것이다.
시청 광장에서 쇼핑거리는 시작된다.이 거리를 「스트로이에」라부른다.정식 길 이름은 아니고 「산책을 즐기는 길」이란 뜻의 애칭이다.
이 길을 따라 중앙역 쪽으로 가면 뒷골목은 섹스 숍 밀집 지역이다.「어른의 장난감」이라는 소위 포르노 물건과 누드 사진 책자라거나 비디오 따위를 파는 가게가 즐비하고,섹스 실연을 보여주는 라이브 쇼 공연장도 수두룩하다고 들었다.
어머니와 함께 덴마크에 왔을 때 오덴세에서 만난 린드그랜 여사가 당부했었다.오덴세에서 코펜하겐으로 되돌아가자면 중앙역에서내리게 된다.역에서 내리더라도 행여 뒷골목을 기웃거리지 말라는당부였다.
「마녀여행」을 하는 중이라는 어머니 말에 린드그랜 여사는 노파심으로 그런 당부를 했을 것이다.라이브 쇼 공연 가운데는 「마녀의 향연」이란 유명한 프로그램이 있어 마녀 가면을 쓴 여인이 관객 중의 희망자 남성을 무대로 불러내 마왕의 가면을 쓰게한 후 함께 실연을 한다던가.숙녀가 갈 곳이 못 된다는 얘기였다. 동화에서 라이브 쇼까지….유럽 사회에 깊이 배어온 마녀라는 존재가 새삼 마음에 걸렸다.동시에 어머니가 마녀에 집착해온까닭도 마음에 걸렸다.
『뭘 선사드리는 것이 좋을까요? 어머니는 액세서리 같은 것엔별로 흥미없어 하시거든요.』 가게를 기웃거리며 우변호사가 물었다. 『편안하고 멋있는 독서 의자는 어떨까요?』 아리영은 어머니가 늘 마녀 책을 읽던 소파를 생각하며 대답했다.그 의자도 덴마크제였다.
『독서의자? 좋은 생각이에요.』 고전적인 가구점에서 마땅한 의자를 찾았다.은은한 색조의 푹신한 천의자였다.서울까지의 탁송을 부탁하며 아리영 것도 사려는 우변호사를 끌고 티볼리공원으로갔다.선물은 호박반지로 족하다.그보다는 이 마지막 밤을 어떻게기념될만한 것으로 만드느냐가 문제였다.
백야의 유원지엔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있었다.노점에서 산 샌드위치와 맥주로 저녁을 때웠다.회전마차도 타고 솜사탕도 사먹으며 아이들처럼 놀았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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