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포커스>市場사회주의의 虛實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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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구엔 탄 하,23세,명문 하노이경제대학 경영학과 3학년 재학중,영어와 러시아어가 유창….이런 정도의 신상명세서라면 베트남에서는 신세대중에서도 앞서가는 축에 들 것이다.그는 이 나라가1986년에 시작한 베트남판 페레스트로이카의 혜 택을 누리는 도무오이세대(世代)다.
구엔 탄 하는 그가 10대였던 도무오이 이전엔 1주일에 서너번씩 식량배급표를 들고 빵가게 앞에서 오래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던 기억을 아직도 잊지 못하기 때문에 도무오이가 가져온 변화를 더욱 실감한다.그의 아버지는 연구소에서 일 하는 고고학자인데 한달 월급이 50달러,의사인 어머니의 월급은 30달러다.그 수입으로는 네식구 살기가 어려워 아버지가 사진사로 부업을해 겨우겨우 살림을 꾸려갔다.
도무오이정책으로 자영업이 폭발적으로 늘고 외국회사와 외국인 방문객이 늘면서 고고학자의 사진부업은 번창하게 되고 구엔 탄 하의 생활엔 더욱 큰 변화가 왔다.외국인을 위해 통역하고 안내하는 일이 폭주하고 있는 것이다.그리하여 그의 가 족들은 저축할 수 있게 되고 2년전에는 3층짜리 집을 사서 우중충한 아파트생활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물론 모든 베트남 사람들이 이들처럼 도무오이의 혜택을 누리는것은 아니다.아직도 이 나라의 개인소득은 230달러 수준이다.
도무오이(개혁=쇄신)의 도입으로 사기업이 허용된다고는 해도 아직은 가내공업 수준에 머무르고 1당지배로 대변되 는 지금의 정치체제아래서 기간산업의 사유화는 생각할 수 없다.
하노이와 하이퐁항(港)의 관계는 서울과 인천의 관계인데도 이들 두 도시를 연결하는 도로는 중앙차선도 그어지지 않고 포장도시원치않은 좁고 울퉁불퉁한 2차선이다.사정은 호치민시(옛사이공)를 중심으로 하는 도로망도 마찬가지다.한마디로 인프라 제로지대다.이 나라의 경제개발은 곧 한계에 부닥칠 것같다.
도무오이는 내 것을 갖고 싶고,국가와 사회라는 추상적이고 초월적인 것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을 위해 일하고 싶은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을 제한적으로나마 수용하는 정책이라고 하겠다.소비에트 인간(Homo Sovieticus) 대신 사욕(私慾)을 가진 인간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노이와 호치민시의 상가에는 생활필수품들이 넘친다.쌀의 자급이 안되던 베트남이 도무오이로 계약재배를 도입하고는 연간 200만~300만의 쌀을 수출한다.성취동기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도무오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들이다.
하노이에서 학자들.고위 관리.베트남전의 영웅 보 구엔 지압장군을 만나 도무오이가 시장원리의 제한을 받는 사회주의(市場社會主義)인지,아니면 사회주의 위의 링 안에서 일어나는 시장경제(社會主義的 市場經濟)인지를 추궁했지만 그들은 도무 오이에 어떤이름을 붙이려 하지 않았다.그들의 목표는 사회주의의 실현이라는말만 강조했다.
우리가 시장사회주의에 주목하는 까닭은 북한이 지금의 위기를 넘기고 개혁과 개방으로 경제를 일으킬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그것은 바로 중국과 베트남의 시장사회주의의 모델을 따를 것으로예상되기 때문이다.
새뮤얼 헌팅턴은 개인소득이 2,000달러나 2,500달러를 넘어서면 국민은 정치적인 자유를 요구한다고 분석했다.베트남이 1당지배를 유지하면서 어디까지 경제를 키워나갈 수 있을 것인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중국은 천안문사태 의 홍역을 치렀다. 구엔 탄 하는 자기는 1당지배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한다.친구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사실 호치민시에서 외국인만 보면 우루루 달려들어 껌 사라,돈 달라고 손을 내미는 수많은 어린이와 젊은 여성들을 보면 반세기동안 전화(戰禍)에 시달려온 그들에게 아직은 자유보다 빵이 급해 보인다.경제의 논리가1당지배체제와 충돌하는 날이 온다고 해도 그것은 몇세대 후의 일일 것 같다.
(하노이서.국제문제대기자) 金永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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