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대만사태와 北核 함수관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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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대만 정국 혼란은 동북아에서 미.중 협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천수이볜(陳水扁)은 대만 독립을 표방해 가까스로 총통으로 당선됐으나 대만의 위상은 더 위태롭게 됐다. 역설적으로 대만의 생존을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3.20대선에서 민진당의 陳총통이 중국 미사일 500기 철수를 요구한 국민투표에 반대하고 중국과의 협력을 강조했던 국민당의 롄잔(連戰)보다 3만표차(0.22%)로 재선됐으나 대만 정국은 격심한 혼란 속으로 몰입하고 있다. 그가 야당이 원하는 재검표 결과 정권을 유지하더라도 그의 정당성은 여전히 문제시될 것이다. 유권자들의 절반이 그를 반대했고 그가 내세운 국민투표는 부결됐으며 그의 당선도 선거 전날 입었던 총상 때문에 동정표로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 대만 독립 지지율 50%로 껑충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국민투표를 대만독립을 위한 전초전으로 여기고 거세게 반발했던 중국과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재선됐다는 사실이다. 물론 陳총통은 현재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호소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그를 불신한다. 한편 대만 독립을 지지해 온 민진당의 지지자들은 1996년에 20%, 2000년에는 39%였던 것이 이번에 50%까지 신장했다. 이들은 문화.언어.가치관에서 본토와 다른 대만 고유의 정체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때문에 陳총통은 지금도 하나의 중국(一國兩制)정책을 거부하고 대만은 "독립주권국가"라고 주장하면서 국민당이 제정한 현 헌법과 다른 새 헌법 채택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대만의 경제는 중국과의 교류 없이는 재생할 수 없게 됐다. 국민총생산의 약 10% 이상이 본토와의 경제교류에 의존하고 있다. 150만명에 달하는 대만 실업인들이 본토의 각지에서 공장을 세우고 1000억달러가량을 투자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면 단순히 경제 협력만으로는 정치체제를 달리하는 두 체제 간에 긴장을 완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급격히 상승하는 국력의 결과 자신감에 가득 찬 중화(中華)민족주의와 자주독립을 갈망하는 대만민족주의 간에 갈등이 심화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대만이 독립을 선언한다면 중국은 무력 사용도 불사할 것이니 양안관계에서 전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 현 실정이다. 이 경우 미국은 '대만관계법'에 의해 대만에 군사지원을 해야 한다.

이러한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고 현상 유지를 지속시키는 데 대해 미국과 중국은 공동시각을 갖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현 세계의 유일 초강국인 미국과, 미래의 초강국이 될 수 있는 중국이 대만해협뿐만 아니라 북한 핵문제도 공동관리하고 있는 데 대해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총리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그의 면전에서 양안관계에서 어느 일방이 현상 유지를 파괴하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대만선거 직후에도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중국의 리자오싱(李肇星)외교부장과 전화회담을 하고 대만선거 결과에 대해 협의했다.

*** 파월 - 리자오싱 '윈윈 게임'

이처럼 중국은 대만의 독립을 막는데 미국의 힘에 의존하고 있고 미국은 북한의 핵무장을 방지하는데 중국의 힘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대만사태에 대해 미국의 영향력 행사를 요구한 뒤에 李외교부장은 곧 평양을 방문해 제3차 6자회담의 조기 개최에 북한이 합의하게끔 노력했다. 이와 같이 미국과 중국은 동북아에서 가장 위험한 두 안보 현안에 대해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역할분담이 성공해야만 대만해협과 한반도에서도 평화와 안정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陳총통은 정권은 장악했지만 대만의 안보는 미국의 군사지원 없이는 유지하기 어렵고 현재 불황에 처한 대만 경제를 재건하는 일도 2대 수출시장인 미국과 중국의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여야는 첨예한 대결을 계속하고 있으니 이는 국민생활을 어렵게 하는 한편 강대국의 개입을 자초하고 있다. 미국도 대만에서 민주주의 발전을 지지하면서도 동북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는 중국과의 협력을 더욱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병준 일본 정책연구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