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무대장치 없는 오페라 청중의 ‘심리’ 못 끌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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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예브게니 오네긴’은 원래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었다가 지난해 12월의 화재 때문에 콘서트홀로 무대를 옮겨 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9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국립오페라단이 올린 오페라 콘체르탄테 ‘예브게니 오네긴’의 중간 휴식이 끝나고 후반부가 시작됐다. 객석이 1부에 비해 많이 비어 있었다. 청중 중 일부가 중간 휴식 시간에 빠져 나갔기 때문이다. 이들을 집중시킬 만한 드라마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탓이었다.

오페라 콘체르탄테는 오페라에서 무대 장치와 의상, 연출 등을 빼고 하는 공연이다. 성악가들이 오케스트라와 함께 무대에 서서 노래만 이어 부른다.

차이콥스키의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은 청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솔직한 시선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대문호인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솜씨다. 영화 ‘리플리’에 오페라 결투 장면이 삽입됐을 정도로 긴장감이 넘쳐 ‘심리 오페라’라고도 불린다.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주인공 오네긴과 그의 친구 렌스키가 결투를 벌이게 되는 순간이다. 렌스키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 올가에 대한 마음과 결투에 대한 두려움을 섞어서 노래한다.

그런데 이날 국립오페라단의 무대는 대체로 무미건조했다.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결투 직전의 장면에서 오네긴을 좋아했던 타티아나 역의 이현정은 성악가로서의 역할에만 집중했다. 중심을 단단히 잡는 고음 처리와 깔끔한 음색은 좋았지만 사랑을 빼앗긴 참담함을 표현하는 배우로서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올가 역으로 출연한 김선정만이 역할에 몰입해 결투 직전의 불안함을 전달했다. 이탈리아어로 된 작품에 익숙한 성악가들이 러시아 가사가 적힌 악보를 보고 부르는 데에만 신경을 쓴 것도 문제였다. 극중 연인 사이의 눈빛 교환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오페라 콘체르탄테에서 주인공 사이의 미묘한 심리전에 청중이 동화되기는 쉽지 않다. 지난해 빈 국립 오페라단이 내한해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오페라 콘체르탄테로 공연했을 때에는 부족한 ‘포장’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눈에 띄었다. 성악가들은 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무대 소품으로 활용하는 재치를 발휘했다.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성악가가 대화까지 나누면서 ‘드라마’를 녹여 넣었다.

그나마 ‘피가로의 결혼’은 익숙한 아리아와 화려한 음악으로 청중에게 낯설지 않다. 이에 비해 감정 표현과 연출이 특히 중요한 ‘예브게니 오네긴’을 국립오페라단이 오페라 콘체르탄테로 선택한 것은 일종의 모험이었다.

지난해 12월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의 화재 이후 콘서트홀에서 오페라 콘체르탄테의 공연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은 올해 오페라 콘체르탄테를 세 번 더 무대에 올린다. 오페라 칼럼니스트 이용숙씨는 “무대장치가 없는 콘체르탄테는 관객을 감정이입시키는 방법 찾기에 더욱 고심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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