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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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우변호사는 부드럽고 정성껏,그리고 우람하게 아리영을 다루었다.블루스나 탱고를 추듯 때로는 감미하게 또 때로는 격정적으로 리드하며 아리영의 영토를 정복해나갔다.
사랑으로 정복당하는 희열과 샴페인의 취기가 어울려 언뜻 눈물을 머금었다.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이클!』 허덕임 속에서 그의 이름을 자연스레 불렀다.
『처음이에요! 이런 느낌,정말 처음이에요.』 우변호사는 대답대신 으스러지게 안았다.그런 말마디가 남자를 얼마나 고무하고 감격하게 하는지 아리영은 알지 못했다.다만 숨김없는 고백을 했을 따름이다.
잠들지 않는 백야처럼 그들은 자지 않았다.
간간이 샴페인을 마셨다.우변호사는 연어알을 혀 위에 얹어 아리영의 입안에 옮겨 넣어주기도 했다.
『이 인어공주 아기를 좀 재워야 할텐데….』 그는 아리영을 안아 팔베개에 누인 채 또 동굴을 찾았다.
『우리,이대로 한숨 잡시다.』 우변호사는 아기 재우 듯 아리영의 등을 토닥거렸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인간은 왜 슬픔의 그림자를 보는가.아리영은 울어도 울어도 시원치 않을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
하늘이 희부옇기만하여 밤인지 새벽인지 분간할 수 없는 가운데잠을 깼다.우변호사의 품 안에서 한 두시간쯤 잔 모양이다.그지없이 편하고 달콤한 잠이었다.어느 땐 여덟시간은 자야 제대로 잔 것 같은 아리영이었으나 신기하도록 몸이 가쁜 했다.
오후엔 크론볼그성으로 갈 계획이었다.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의 무대모델로 삼아졌다는 16세기의 옛 성이다.발트해와 대서양을 잇는 좁은 해협(海峽)절벽 위에 지어져 있어 「북쪽바다」를 보기엔 더할나위 없는 곳이기도 하다.
늦은 아침겸 점심을 들고 관광택시를 잡았다.금실 수를 가슴에놓은 감색 블레이저 재킷 차림의 멋쟁이 노(老)기사였다.
노기사는 아리영을 보더니 금테 모자를 벗고 정중히 인사했다.
이런 미인을 모시게 된 오늘은 대단한 행운의 날이라며 소박하게기뻐하기도 했다.후드 달린 쇼킹 핑크빛 점퍼와 바지로 차린 아리영은 정말 두드러지게 아름다웠다.
코펜하겐에서 48㎞.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1시간 가웃 달린 끝에 중세풍의 옛 성이 홀연히 나타났다.삼중의 성벽과 해자(垓字)를 넘어 성 안으로 들어가는 돌담에 셰익스피어의 초상이 아로새겨져 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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