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도부·군부 ‘지진 갈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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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진으로 중국 군부와 당정 고위층 간의 불협화음이 불거져 나왔다. 군부 개편설까지 나돈다.

지진 피해 구조 과정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와 군부 간에 마찰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 총리는 지진 발생 직후 현장으로 달려가 “한 명의 생명이라도 구하기 위해 백배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군을 중심으로 한 구조대는 10가구 남짓 고립된 쓰촨(四川) 둬산(多山) 지역에도 투입돼야 했다. 이 때문에 많은 군인이 집단 매몰되거나 사고로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군 내부에서는 “이처럼 큰 구조비용을 치르고, 수많은 병사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생사 불명의 10여 명을 구하기 위해 달려가야 하느냐”는 반발이 있었다.

중국 군대가 반발한 것은 전통적인 구조 개념과 원 총리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중국 정부의 전통적인 구조 개념은 ‘인민의 생명보다 국가이익 우선’이었다. ‘인민은 국가와 전체 인민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공산주의적 관념이 낳은 산물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54년 후베이(湖北)성 일대에 발생한 초대형 홍수였다. 당시 당 수뇌부는 우한(武漢)을 지키는 것이 ‘더욱 큰 국가적 이익’이라고 판단했다. 중국 정부는 징저우(荊州) 지역에 ‘물길 개방’ 명령을 내렸다. 폭류가 우한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기 위한 물꼬 트기 작전이었다. 그 결과 징저우 일대 농지와 농가는 모두 물에 잠겼다. 주민 수만 명이 물길에 휩쓸려 내려갔다.

그러나 이번 지진 때는 원 총리가 전통적인 구조 개념에서 벗어나 ‘생명 중시 구조’를 전개하자 초기에는 군부가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아직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계열의 장성들이 군대를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어 원 총리의 지시에 고분고분하게 따르지 않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군대의 반발은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원 총리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지진 수습 후 장 전 주석 계열 장성에 대한 숙정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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