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평범한 사물과 일상 ‘농담’으로 풀어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문학동네, 340쪽, 1만2000원

그가 발견한 바로는 희망은 86g이며 370Kcal의 열량으로 달아오른다. 희망은 3분을 기다려야 한다. 희망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야 한다. 희망에도 유통 기간이 있다. 상하기 전에 희망을 먹어라.

‘희망소매가격’ 700원짜리 컵라면 뚜껑을 보고 작가의 입담이 도졌다. “희망을 소매한다니? 언제부터 희망이 도매금, 소매가격으로 팔 정도로 흔해졌는가?”(185쪽). 하지만 컵라면 면발이 뜨거운 물 속에서 불어 오를 동안만이라도 희망이 부풀어 오른다면 그야말로 희망적인 3분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그의 말대로 ‘문자에 관련된 직업병’에 독하게 걸렸다. 거리며 건물이며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간판과 구호를 새겨 넣은 ‘문자의 왕국’ 대한민국에서 치유되기 힘든 병이다. 이 불치병을 다스리려 그가 복용하는 약물이 ‘농담’이다.

작가 성석제는 시골 소년이었던 유년기부터 벌써 쉰을 바라보는 중년에 이르기까지 그가 접한 삶의 풍경들을 스냅 사진으로 담았다. 작정을 하고 공들여 찍은 사진이 아니라 눈 가는 대로, 손 가는 대로 카메라를 들이댔던 순간이다. 카메라의 셔터가 ‘찰칵’하는 짧은 순간처럼 작가의 눈은 장난치듯 찡긋거리며 평범한 사물과 일상에 농담을 건넨다.

작가의 입담에서 입맛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다. 각종 먹거리 이야기를 맛깔 나는 문장으로 풀어낸 전작 산문집 『소풍』처럼 이번 산문집 곳곳에서도 군침 고이게 하는 문장들이 독자를 기다린다. 장호원 황도를 설명하면서 “시지는 않고 약간 새콤한 맛이 귀 아래쪽의 침샘을 자극하자마자 홍수처럼 분비되는 침 때문에, 심지어 고막에서 가까운 무슨 도랑에서 물 흘러가는 소리가 들린다는 사람도 있다”(123쪽)고 너스레를 떤다. 2005년 남북작가대회 참관 차 찾은 북녘 땅 이야기의 대부분을 현지에서 접한 이북 음식 소개로 채웠으니.

책의 띠지에는 “그의 플래시가 발광(發光)하면 포복절도할 농담이 쏟아진다”고 적혔다. 이번 책에서 그의 농담은 담담하다. 담담하게 스며든 이야기의 여백 어딘가에서 독자도 자신의 일상 속에 숨겨진 농담을 찾아내길 바라는 모양이다.

배노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