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요리는 지금 ‘춘추전국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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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중국 음식점엔 대형화·고급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수천년 동안 민이식위천(民以食爲天)을 지켜온 중국. 가위 중이식위천(中以食爲天)이라 할 만 하다. 그러나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의 식문화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현상은 통상 베이징·상하이·쓰촨·광저우로 나뉘던 4대 요리, 더 세분화해 8대 요리로 구분하던 계파에 지각 변동이 일고 있는 것이다. 대전 우송대 외식조리학과 교환교수로 있는 천중밍(陳忠明·양주대학)교수는 “개혁 개방이 가장 크게 사회에 영향을 미친 건 인구 이동”이라고 꼽았다. 시골 농민들이 도시로 진출해 고향의 특색있는 음식점을 운영함에 따라 지역 단위에 머물던 요리가 전국적으로 퍼지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교통수단의 발달로 인해 음식 재료들이 지역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게 됐다. 정보와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인터넷의 보급도 큰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어느 도시를 가나 중국 전역의 요리들을 접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기존의 계파 요리가 서로 혼재하는 양상을 보인다. 베이징에 있는 카오야(오리구이)전문점에서도 광둥스타일의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고, 광저우의 딤섬전문점에서도 쓰촨음식에 쓰는 매운 고추가 등장한다. 우리나라 50배에 달하는 영토와 56개 민족의 13억 인구로 요약되는 중국대륙의 음식이 통일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산둥대 자오젠민(趙建民)교수는 “서로 다른 지방요리가 각각 가지고 있는 장점을 융합해 지역을 초월한 새로운 형식의 요리들이 하루가 다르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예전에 관심 밖에 있던 지역의 음식들도 대등한 대접을 받고 중국의 대표 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둔황요리, 지린요리, 항저우요리, 상하이요리, 랴오닝요리, 산시요리, 시안요리, 닝보요리로 구분하는 ‘신개념 8대요리(표 참조)’가 그것을 의미한다.

음식점이 대형화·고급화하고 있는 것도 개혁 개방이후의 두드러진 모습니다. 광저우 시내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왕가오위춘(旺閣漁村)레스토랑. 한꺼번에 2000명이 식사할 수 있는 초대형 음식점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광저우 시내에는 외제차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음식점도 있다. 사장이 개인적으로 수집한 외제 명차를 실내에 전시해 놓은 것. 베이징에 있는 카오야 레스토랑의 실내 인테리어는 온통 대리석으로 궁궐에 버금간다. 이들 레스토랑의 일인당 가격은 대략 500위안(7만5000원 상당). 중국 노동자 한 달치 월급을 한 끼에 먹어 치우는 셈이다. 그래도 대형 고급 레스토랑들은 빈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다.

광둥요리 전문가 천빙산(陳秉山)은 “최근 부(富)를 축적한 사람들은 음식의 가격에 구애를 받지 않는다”며 “신선한 재료로 최고급 요리를 만들어내면 원하는 값을 척척 꺼낸다”고 말했다.

중국 최고급 요리로 꼽히는 만한취안시(滿漢全席)와 쿵푸옌(孔府宴) 에 대해 중국의 요리계가 재조명에 나선 것도 고급화와 무관하지 않다. 만한취안시는 만족과 한족의 산해진미를 모두 갖춘 궁중연회로 중국전통요리의 집대성으로 꼽는다. 사흘에 걸쳐 진행되는데 접하는 음식만 108가지에 이를 정도다. 쿵푸옌은 공자의 저택을 방문한 황제와 관리들을 대접하던 음식으로 온갖 산해진미가 펼쳐진다.

곡부사범대학교 공자문화학원 뤄청례(駱承烈)교수는 “공자연 음식은 단순한 화려함을 뛰어넘어 음식을 대하는 자세 등 현대인에게도 중요한 음식철학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유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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