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호스’ 큰바위상 60년째 조각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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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신을 상징한다면 크레이지 호스는 용기와 현명함 등 인디언들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사진=이수기 기자]

세계 최대의 산상 조각으로 기록될 미국의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성난 말·사진)’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 만 60년이 됐다. 조각상이 새겨지고 있는 사우스다코타주 블랙힐스 일대에서는 바위 폭파 등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열리고 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1948년 6월 3일 처음 조각되기 시작한 이 크레이지 호스상이 언제 완성될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높이 172m, 폭 195m가 될 이 조각상은 현재 겨우 얼굴 부분만을 드러냈을 뿐이다.

말을 탄 인디언 전사가 손가락으로 먼 곳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질 이 조각상의 주인은 크레이지 호스다. 그는 수우족을 이끌고 1876년 리틀 빅 혼 전투에서 커스터 중령의 미 제7기병대를 궤멸시킨 영웅이다. 불패를 자랑하던 커스터 중령은 여기서 목숨을 잃었다. 크레이지 호스 역시 백인 기병대의 대대적인 보복작전으로 죽임을 당했다.

작품에 처음 손을 댄 사람은 폴란드계 조각가인 코작 지올로브스키다. 그는 인디언들의 성지이기도 한 인근 러시모어산에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모습이 새겨졌다는 사실에 분노한 수우족 추장 스탠딩 베어로부터 조각 요청을 받아들였다. 작업 현장은 러시모어산으로부터 13㎞가량 떨어져 있다.

조각은 처음부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인디언을 위해 일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올로브스키는 다른 백인들의 비난을 받았다. 초기엔 수동식 드릴과 망치, 다이너마이트가 사용 가능한 도구의 전부였다. 크레이지 호스상의 쭉 뻗은 팔과 그가 타고 있는 말 사이의 공간을 만드는 데만도 2년이 걸렸다. 1982년 74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올로브스키는 35년간 740만t의 돌을 깼다.

지올로브스키가 숨진 다음에는 그의 부인인 루스와 자식·손자들이 이 일을 물려받았다. 루스는 지올로브스키의 열정에 반해 그와 결혼했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10명의 자녀 중 7명이 크레이지 호스에 매달려 있다. 98년 6월에서야 겨우 조각상의 얼굴이 완성됐다. 얼굴 길이만 27m에 달한다. 러시모어산의 대통령 얼굴들(길이 18m)보다 훨씬 크다.

크레이지 호스상은 순수 민간 자본으로 만들어진다. 그의 저항정신을 기리기 위해 정부의 재정 지원을 거절해온 탓이다. 입장료와 헌금 등으로 필요한 돈을 충당한다. 부인 루스는 “현재 몸과 말을 만들고 있지만, 언제 끝날 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미 국립인디언교육협회 로버트 쿡 회장은 “러시모어가 미국인들의 정신을 상징한다면 크레이지 호스는 용기와 현명함 등 인디언들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이수기 기자

◇리틀 빅 혼 전투=수우족은 1866·68년, 백인들과 두 차례 전쟁을 치렀다. 승리의 대가로 미국 정부는 블랙힐스를 수우족의 땅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이 일대에서 금이 발견되자 약속은 물거품이 됐다. 미 정부는 수우족을 몰아내기 위해 군대를 보냈고 이에 수우족이 맞서 싸운 게 리틀 빅 혼 전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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