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KIKO의 비명 … 키코가 뭐기에 중소 수출 기업들이 난리인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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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틴틴 여러분, 혹시 ‘환 헤지’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환헤지는 환율 변동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을 막기 위해 별도의 계약을 하는 걸 말합니다. 수출을 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기업들은 보통 환헤지를 합니다. 이때 주로 동원되는 수단이 선물·옵션 등 파생상품입니다. 그런데 올 들어 KIKO(Knock In Knock Out)란 파생상품으로 환헤지를 했다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된 수출 기업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위험을 피하려다 오히려 더 큰 화를 불렀다는 것이지요. 도대체 KIKO가 뭐기에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수익성 높이고 헤지 기능 떨어뜨려=KIKO에 대해서 알려면 우선 헤지(hedge)부터 알아야 합니다. 헤지는 울타리란 뜻입니다. 울타리를 치는 목적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입니다. 금융 거래에도 여러 위험이 뒤따릅니다. 환율 변동이 대표적이죠.

상품을 수출하고 그 대가로 외화를 받는 수출 기업들은 항상 환율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조선업체의 경우 배를 주문받아 넘겨줄 때까지 수출대금을 몇 년간 나눠 받습니다. 그 기간 동안 환율이 변하면 기업의 수익도 들쭉날쭉하게 되겠죠. 투자가는 물론 기업도 가장 꺼리는 게 불확실성입니다. 이럴 때 기업은 파생상품 거래로 환율을 고정시켜 적정 마진을 확보하는 전략을 씁니다. 장래에 들어올 외화를 미리 특정 환율로 팔기로 계약하는 것이죠. 1년 뒤 시장 환율은 계약된 환율보다 오르거나 떨어질 수 있습니다. 수출 기업은 환헤지로 환율이 떨어졌을 때 손해를 피할 수 있습니다. 대신 환율이 오를 경우 거둘 수 있는 이익도 포기하는 셈이죠.

환헤지용 파생상품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통화 선물과 선물환입니다. 둘 다 외화를 어느 시점에 특정 환율로 사겠다는 계약을 거래한다는 점에선 같습니다. 하지만 거래되는 장소와 상품의 성격은 다릅니다. 통화선물은 한국증권선물거래소에서 마치 주식과 같이 사고 팝니다. 상품도 정형화돼 있지요. 하지만 선물환은 장외에서 거래 당사자끼리 팔고 삽니다. 언제, 얼마에 팔고 살지도 계약 내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마치 백화점에서 파는 기성복과 맞춤양복의 차이라고 할까요. 수출보험공사에서 판매하는 환변동 보험도 공사가 중간에 거래를 중개하기는 하지만 실제 내용은 선물환 거래와 같습니다.

그런데 지난 2~3년간 조선업체가 호황을 맞는 등 수출이 잘 되면서 달러를 미리 팔려는 곳이 크게 늘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사려는 곳은 적었지요. 자연히 선물 환율도 내려갔습니다.

이때 나타난 게 KIKO 같은 변형된 상품입니다. KIKO는 선물환을 팔 때보다 더 높은 가격에 달러를 팔 수 있는 상품입니다. 대신 조건이 붙습니다. 일정 환율대를 설정하고 상한선을 넘어서면(Knock In) 시장 환율보다 싼 가격에 많은 외화를 팔아야 합니다. 또 하한선 밑으로 내려가면(Knock Out) 계약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결국 수익성을 높인 대신 위험 회피 기능은 떨어뜨린 상품입니다. 특히 환율이 급등하면 위험한 구조지요. 하지만 추락한 선물 환율에 만족하지 못한 일부 수출업체들은 이 상품에 반색했고, 은행들도 적극 판매에 나섰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경제연구소들이 환율 하락을 점쳤던 터라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 것이죠.

◇환헤지도 과하면 탈=하지만 올 들어 예상 외로 환율이 급등하자 문제가 터졌습니다. 시장 환율이 대부분의 KIKO 계약에서 설정된 상한선을 훌쩍 넘어서 버린 것이죠. 기업으로선 시장 환율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그것도 계약 물량의 2~3배를 팔아야 하게 생겼습니다. 특히 과도한 물량을 계약한 업체의 경우 회사 경영이 어려워질 정도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수출대금으로 들어올 달러 규모보다 많은 양을 팔아야 하니 당장 시장에서 높은 가격에 달러를 사다가 싼 가격에 은행에 내줘야 하게 생겼지요. 이러다 보니 책임 공방도 뜨겁습니다. 일부 기업은 은행이 위험을 제대로 설명하기보다는 장점만 강조해 상품을 팔았다며 소송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은행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상품으로 이익을 본 기업이 많았는데 손해가 나자 딴소리를 하고 있다고 반박합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는 너도나도 환율이 내릴 것이라고 기대한 쏠림 현상이 이런 화를 키웠다고 말합니다. 구조도 복잡하고 헤지 기능은 떨어지는 상품이 큰 인기를 끈 데는 기업과 은행의 과신·과욕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겁니다. 금융시장을 관리·감독하는 정부도 책임을 면키는 어렵습니다. 최근 정부 대책은 개별 기업의 장외 파생거래 정보를 은행연합회 등에서 취합해 과도한 파생상품 거래를 막겠다는 겁니다. 무엇이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

흔히 파생상품을 ‘양날의 칼’이라고 합니다. 적절히 이용하면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는 유용한 도구가 되지만 자칫 투기적 도구로 변질돼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사실 수익성은 높고 위험은 낮은 상품이라는 것은 존재하기 힘듭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격언을 되새겨 보면 어떨까요.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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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율이 오르면 뭐가 좋고 나쁜가요
가격경쟁력 커져 수출 늘지만, 수입품 값도 올라 물가가 뛴답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기업은 쾌재를 부릅니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니 외화로 환산한 수출 상품의 가격은 낮아집니다. 수출 기업으로선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커진다는 의미죠. 게다가 수출대금으로 받은 외화의 가치는 오르니 이익도 저절로 늘어납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특히 수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환율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릴 경우 그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KIKO의 사례는 정부도 미처 예상치 못한 경우입니다.

가장 뚜렷한 그림자는 물가 상승입니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입품 가격이 올라가게 되고 물가도 오름세를 탑니다. 특히 이번처럼 유가와 원자재 가격이 폭등하는 가운데 환율까지 끌어올리면 물가 상승세는 더 가팔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소득이 줄어듭니다. 결국 수출 기업이 본 이득의 대가를 모든 국민이 나눠 지게 되는 셈입니다. 지갑이 얇아지면 자연히 가계는 소비를 줄입니다. 1분기 중 민간소비는 전분기보다 0.4% 증가하는 데 그쳐 급속히 둔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수출이 늘어나 고용과 투자가 살아난다면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그 효과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수출 증가에도 1분기 설비투자는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0.4%로 오히려 뒷걸음쳤습니다. 결국 내수가 위축돼 성장률도 예상보다 떨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한은과 국내 민간연구소들은 올해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약 4.7%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커진 외형을 환율이 까먹어 경제규모는 오히려 쪼그라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실질GDP에 물가 수준 지표인 ‘GDP 디플레이터’(지난해 1.2%)를 더하면 경제규모를 나타내는 명목 GDP의 증가율이 나옵니다. 이 증가율이 예상 환율 상승치인 6~7%와 비슷하거나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결국 달러로 환산한 명목 GDP가 지난해(9699억 달러)와 비슷하거나 줄어 올해도 ‘1조 달러’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환율이 수출을 끌어올리는 힘도 예전만 못하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무엇보다 우리 수출산업이 가격경쟁력에만 의존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얘기입니다. 대표적으로 조선산업은 환율 움직임과 관계없이 꾸준히 호황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은행도 최근 우리나라 수출이 호조세를 보이는 이유는 주로 자원부국들을 중심으로 해외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환율효과는 적다는 분석입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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