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진혁 칼럼

탄핵파동서 국민이 건질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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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지금까지의 상황을 놓고 본다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성사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4.15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약진할 것이다. 30% 선에서 맴돌던 盧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이미 50%에 육박할 만큼 치솟았다. 반면 그를 탄핵소추한 야당들은 초주검이 됐다. 탄핵파동 20일을 중간결산해 본다면 이처럼 더 강력해진 盧대통령과 형편없이 약해진 야당, 이런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수백만이 시위에 나서고 수많은 사람이 비분강개하고 수많은 단체가 집단적 의사표출을 한 것이 이런 결과를 얻자는 것이었던가.

*** 국민의 賞罰 불공평한 점 없나

민심을 거스르고 탄핵안을 밀어붙인 야당이 엄청나게 큰 벌(罰)을 받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지금 전망으로는 그들의 총선 참패는 분명하다. 앞으로 아마 민심을 거스르고 밀어붙이는 정치행태는 다시는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盧대통령은 무슨 좋은 일을 했길래 그런 후한 점수를 얻을까. 열린우리당은 무엇을 잘했길래 전국을 휩쓰는 지지를 받을까. 이런 결과가 국익이나 정치발전에 도움이 될까 안될까. 그동안 탄핵반대의 거센 물결에 밀려버렸지만 선거중립 위반 등에 대해 盧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는 것도 국민적 요구였다. 사과하지 않은 그의 과오가 탄핵안을 밀어붙인 야당의 과오보다 경미하다고 하더라도 그가 탄핵소추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그리고 그가 기자회견에서 측근비리를 옹호하고 재신임과 총선을 연계한 것도 벌을 받으면 받을 일이었지, 결코 상받을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탄핵파동에서 국민이 내린 상.벌은 다소 불공평한 것은 아닌가.

총선에서 국민이 야당을 벌주고 탄핵소추를 저지하기 위해 애쓴 열린우리당을 상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앞으로 4년의 국정을 이끌 국회의원을 뽑는 기준이 탄핵반대냐 찬성이냐의 한가지만은 아닐 것이다. 탄핵 찬.반만이 이 시절 국정의 전부도 아니다. 그리고 어느 쪽이 어떤 정책을 가졌는지, 누가 더 좋은 인물을 공천했는지 등 정말 국민이 선거에서 꼭 알아야 할 사항들은 아직 검증도 제대로 되지 못했다. 선거철인데도 수많은 국가적 과제들이 탄핵문제에 묻혀 논의조차 되지않고 있다.

이제 공식 선거기간에 들어가고 촛불시위도 자제키로 했다. 그동안의 탄핵파동에서 우리가 얻을 것과 찾을 것이 뭔지 냉정하게 따져볼 때가 됐다. 한두달 후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盧대통령이 복권되는 것으로만 이 파동이 끝난다면 국민 입장에서 그건 너무 손해보는 일이다. 그토록 충격을 받고 국가적 혼란을 겪은 대가가 고작 원상 회복이어서는 곤란하다. 뭔가 건지는 것이 있어야 한다.

뭘 건져야 할까. 건져야 할 가장 절실한 것은 盧대통령의 달라진 모습이다. 이번 파동이 있기 전이나 있은 후나 똑같은 盧대통령, 똑같은 국정운영이라면 우리는 이번 홍역을 치른 대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전처럼 경솔한 언행.편가르기.야당 모욕주기.측근 감싸기.정국 불안 등을 일삼는다면 그의 탄핵을 목매어 반대했던 사람들도 결국은 후회할 것이다. 더구나 높은 지지율과 거대 여당으로 강력해진다면 그런 그의 문제점 역시 더 강력하게 등장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혹시 '시민혁명'을 밀어붙이는 일은 없을 것인가. 필자는 특히 盧대통령이 탄핵정국에서 방송과 노사모와 강금실(康錦實)장관 등의 맹활약을 보고 "역시 내 사람밖에 없다"고 확신하게 됐을까봐 걱정스럽다. 탄핵을 막아준 국민은 대통령에게 이런 염려에 대한 해답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盧대통령은 국민에게 보답할 의무가 있다.

*** 강력해질 盧 그만큼 달라져야

또 한가지 건질 일은 탄핵파동에 묻혀버린 총선을 총선답게 치르는 일이다. 총선은 탄핵문제에 대한 국민투표도 아니고, 친노(親盧).반노(反盧)의 신임투표도 아니다. 앞으로 4년간 나라의 수많은 과제와 씨름할 성실한 일꾼을 뽑는 선거다. 16대 국회에 분노하고 진저리를 쳤다 해서 이번 총선을 감정적으로 치른다면 17대 국회 역시 좋은 국회가 되기는 어렵다. 또 다시 국민이 피해자가 된다. 16대 국회를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17대 국회는 잘 뽑아야 한다.

탄핵파동이라는 건국 후 처음 있는 큰 일을 겪으면서 건져야 할 것은 확실히 건져야 성숙한 국민이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