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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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얼다」라는 우리 옛말엔 「성교(性交)하다」는 뜻이 있다.그래서 「얼치」는 「섹스하는 남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샘지기 연못지기,샘왕 연못왕,연못짐승 구렁이,그리고 성행위하는 사나이….「얼치」는 여러가지 뜻을 지닌 다의어(多義語)인 셈이다. 우리 옛말엔 이같이 겹뜻의 낱말이 많았다.따라서 겹뜻의 노래,즉 이중가(二重歌)를 부르기가 수월했던 것이다.
노인헌화가(老人獻花歌)도 그랬다.
「짓배 바고 가희(紫布岩乎希)…」라 노래함으로써 「자줏빛 바윗가에」와 「귀인의 배(여성 성기) 박아가이」란 뜻의,소리는 같되 내용이 다른 두가지 말마디를 포개어 읊었던 것이라고 서여사는 추정했었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씀새는 아주 담담하다.노골적인 섹스 프로포즈 대목이며,얼치와 얼린 섹스 사건도 논평과 묘사없이 사무적으로 처리하고 있다.「자주 붙들렸다」는 일은 「매번 되돌아 왔다」는 일과 같다.영영 붙들려간 것이 아니기 때 문에 문제될것이 없다는 계산인가.당시의 프리 섹스 풍조를 엿보게 하는 서술이다. 수로부인도 문문치않은 여인이다.유괴되어 갔다 돌아와도부끄러워하거나 꿇리거나 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차라리 불감증 같다.용과의 「해중사(海中事)」를 묻는 남편에게 그녀는 선선하고 당당하게 대답한다.
『칠보궁전(七寶宮殿)이었어요.음식은 맛있고 향기롭고 깨끗하여인간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정이 깃들인 말투다.
「이렇게 말하는 부인의 옷에서 이상한 향기가 풍겼다」며 『삼국유사』는 이례적으로 이 부분에서만은 섬세하고 에로틱한 묘사를펴고 있다.심상치 않은 표현이다.
수로부인은 용과 통정(通情)하여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은 아닐까.정중하고도 우람하며,감미하고도 힘찬 정사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물속 깊은 곳에 잠겨 있다가도 불을 뿜으며 하늘로 치솟아 날아다니는 지체높은 짐승.용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여의주(如意珠)를 지니고 있다.지혜와 행동력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끄는 프로메클레스.
「용」으로 상징되는 남자다운 남자에게 수로부인이 애정을 느낀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그녀가 평소 남편에게 애정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는 얘기도 된다.
결혼이란 슬픈 성채(城砦)가 아닌가.이 성채가 보장해 주는 것은 애정이 아니라 형식이다.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애정을 길이보장해주지는 못하면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부를 법률이라는 성벽으로 굳건히 가두는 공간.
수로부인은 용으로 인하여 그 성벽 넘어 날 수 있었다.
-나도 날 수 있을까.
아리영은 우변호사와 코펜하겐을 다시 생각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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