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모교에 나랏돈 퍼준 관리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23일 오후 3시. 교육과학기술부 기자실에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스승의 날 학교 현장방문 관련 발표문’이란 제목이었다. 자료 배포 직후 박백범 대변인은 “교과부 간부들의 모교에 지원키로 한 교부금 약속은 잘못된 관행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며 “철회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보도자료에서는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교과부 장·차관과 실·국장이 스승의 날(15일)을 전후해 모교를 방문해 국가 예산으로 500만~2000만원씩을 지원키로 한 것이 언론에 집중타를 맞자 나름대로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교과부는 전날만 해도 “장·차관이 해오던 관행을 실·국장들이 대리한 건데 뭐가 잘못이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다. 학교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황인철 국장은 “한승수 총리가 학교를 방문할 때도 증서를 제공했다”며 “법적으로 잘못된 것은 없다”고 주장했다. 관행이기 때문에 기준 없이 예산을 사용해도 괜찮다는 듯 들렸다. 그러나 교과부는 하루 만에 꼬리를 내렸다. 언론에 이어 청와대까지 잘못된 관행을 지적하자 어쩔 수 없이 몸을 낮춘 것이다. 특히 류우익 대통령실장은 이날 오전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교과부 공무원들이) 과거의 관행에서 탈피하지 못한 대단히 잘못된 일”이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과부의 유감 표명 보도자료와 함께 돈을 지원키로 한 것을 철회했지만 국민이 그것을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지는 의문이다. 유감 표명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관 명의로 할지 말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자료는 결국 김 장관이 아닌 교과부 명의로 나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진지한 제고와 성찰, 반성 없이는 교과부가 신뢰받을 수 없을 것”이라고 비난했다.

별다른 죄의식 없이 국가 예산을 모교에 퍼주는 교과부 관리들의 인식은 ‘국민을 섬긴다’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철학과 맞지 않다. 교과부 관리 가운데는 “어차피 학교에 지원할 돈인데 어디에 준들 뭐가 문제냐”고 반문하는 사람까지 있었다.

강홍준 정책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