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요무대"진행 김동건 아나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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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KBS-1TV 『가요무대』가 4일로 10돌을 맞는다.「강산도변한다」는 10년동안 이 프로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김동건(57)아나운서 덕분이다.「우리시대 최고의 아나운서」김동건씨를 만나 『가요무대』에 얽힌 사연을 들 어봤다.
[편집자註] 85년 10월말.김동건 아나운서에게 조의진PD로부터 전화가 왔다.『가요무대』라는 신설 쇼프로그램의 진행을 맡아달라는 부탁이었다.
『거절했지요.당시 쇼프로는 청소년을 위한 것 뿐이었습니다.63년 방송생활을 시작해 당시 경력 22년째였던 제게는 어울리지않는다고 생각했었지요.』 11월초.녹화를 하루 앞두고 조PD가직접 김씨의 집을 찾았다.『형님,첫 방송도 못 나갈 판입니다.
제발 첫회만이라도 맡아주십시오.』후배의 간곡한 부탁에 김씨는 결국 『가요무대』 첫방송의 진행을 맡았다.
녹화가 끝난 뒤 김씨는 즉시 조PD에게 달려갔다.『이사람,부탁이 있네.이 프로 내가 맡도록 해주게.』 『이제 설 자리를 찾았다』며 기뻐하던 원로가수들의 모습.노부모를 모시고 함께 즐기던 방청객의 모습이 김씨의 마음을 바꿔 놓은 것이다.김씨는 10년동안의 『가요무대』중 87년 리비아 대수로공사 현장에서의녹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워낙 바람이 세게 불어 사막에 세워놓은 세트가 넘어질까 세트담당자와 목수들이 세트를 꼭붙잡은 채 녹화를 진행해야 했다고.
『아들과 함께 나온 한 6.25 전쟁미망인이 있었습니다.남편을 잃은 이야기,고생스럽게 아들을 키운 이야기를 조용하고 담담한 어조로 풀어놓았습니다.그 미망인이 전장에서 거둬들인 남편의유품이라며 40년동안 가슴에 품고 다닌 손목시계 를 꺼내 놓았을 때 저도 울고 방청객도 울었습니다.』 정치인에서 구두닦이까지 다양한 인사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나누던 KBS토크쇼 『11시에 만납시다』도 김씨가 아끼는 프로그램.『11시…』를 통해 7여년동안 2,000여명과 이야기를 나눴지만 가장 인상에 남는사람 역시 가요무대와 얽힌 일화가 있다.
『전라도 두메산골에서 60년간 베를 짜온 한 할머니가 있었습니다.「11시에…」는 즉흥 대담프로라 각본이 없습니다.방송전 PD가 시험삼아 이야기를 해보았지만 할머니는 겨우 「그래」「아니야」라는 말만 꺼낼 뿐이었습니다.도저히 프로그램 을 진행할 수 없겠다기에 제가 그 할머니를 만나보았죠.저를 보자마자 할머니가 입을 열었습니다.「이 양반 가요무대네」.』「됐다」고 생각한 김씨는 PD에게 『걱정말라』며 녹화를 진행시켰다.한 번 입을 뗀 할머니는 달변이었다.
그러나 10년동안 가요무대를 진행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전에 한번 방청석에 모시지 못한게 김씨에겐 씻을수 없는 불효로 남아있다.『가수들의 노래에 흥겨워 하시는 모습을 비디오에 담아놓았더라면….노부모를 모시고 나온 방청객을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옵니다.』 지난 93년 프리랜서를 선언한 뒤 지금은 『가요무대』진행만을 맡고 있다.쉬고도 싶고 후배들에게 길을 양보해야 할 때도 됐고해서 출연을 자제하고 있다.
『아나운서에게 꼭 필요한 것은 말솜씨나 용모가 아닙니다.아나운서는 솔직해야 합니다.그래야 상대방도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으니까요.』 김씨가 풀어놓은 「한국에서 가장 편안한 진행자」가된 비결에는 30성상동안 쌓이고 쌓인 김씨의 인간적 체취가 짙게 배어 있다.
한국 최고의 장타자인 국가대표 골프선수 김주형(21)군의 부친인 김씨 스스로도 핸디캡이 싱글이지만 아들 뒷바라지 하느라 골프에 대한 취미를 잃어버릴 정도로 부성애 또한 지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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