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씨 부정축재 사건-金대통령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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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노태우(盧泰愚)전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1차 조사가 일단 끝났다.그래서 비자금파문을 둘러싼 정국도 고비를 맞게 됐다.확산과수습의 양방향 가운데 어느쪽으로 물꼬가 잡힐지 초미의 관심사다.그 방향에 따라 향후 정치 모습까지도 달라질 수 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문제의 열쇠는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쥐고있다.그만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盧씨의 신병을 어떻게 처리하고,비자금정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등등.아마金대통령도 숙고를 거듭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을 미리 알기 어렵다.金대통령은 『비자금이 아니라 부정축재』『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등의 원칙론을 통해사태를 보는 시각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방침은 말하지 않았다.盧씨의 구속여부와 정치권 비자금에 대한 조사확대여 부를 비롯,정작 궁금한 대목에 대해서는 자신의 의중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통령 측근들도 『검찰수사를 지켜보자』는 말만하고 있다.수사가 진행중인 상황에서 얘기를 해봐야 외압수사라는 의혹만 자초할것임을 알기 때문이다.야당은 벌써 『짜맞추기 수사』라고 주장하는 판이다.
그러나 함구속에서도 여론 동향등은 면밀히 분석하고 있는 것같다.이번 비자금정국을 어떻게 몰아갈 것인지,이에 따른 득실은 무엇인지를 짚어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인 것같다.총선이 임박해있다는 점도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 볼때 희미하게나마 金대통령의 선택을 예견해볼 수도 있을 것같다.우선 비자금정국을 지나치게 오래 끌고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金대통령과 그 주변이 盧씨및 6공 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음에도 비자금파문이 여 권에 호재가아닌 것은 분명하다.끌면 끌수록 총선에 유리할 게 없어 보이는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분위기를 일신하는 돌발조치가 취해질 가능성도 있다.구체적 방법으로는 개각 또는 당정(黨政)개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어차피 여권은 연말에는 선거체제로의 전환을위한 개각을 해야 한다.출마를 위해 각료직을 내놓아야 할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민자당은 뒤늦게실현가능성을 부인했지만 서정화(徐廷華)총무는 2일 지역구와 전국구의 비율조정과 국고보조 정치자금의 축소문제에 대해 언급했다.이처럼 선거구와 자금문제가 본격 논의되면 정치 권은 다른 문제에 신경쓸 여유가 없어지게 된다.
물론 확전(擴戰)가능성도 있다.예컨대 야당의 비자금 공개와 추궁을 통해 세대교체나 정계개편을 추진하는 방안이 검토될 수 있을 것이다.실제로 야당은 이에 대한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아직은 실현가능성이 약해보이나 이 부분에 관한 盧씨의 「결정적」진술이나 증거를 확보하게 되면 국면이 달라질 수 있다.
또한 金대통령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한계를 지적하는 의견도있다.정치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여서 어떤 수(手)도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그렇기 때문에 원칙대로 가는 길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는 지적도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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