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5 합병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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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대림과 한화가 5 대 5 비율로 설립한 국내 1위의 나프타 분해 사업장인 여천NCC가 요즘 바람 잘 날이 없다. 이 회사는 1999년 한화석유화학과 대림산업이 각사의 나프타 분해시설(NCC)을 통합, 절반씩 지분을 투자해 출범했다. 여천NCC는 통합 당시 1조8000억원대이던 매출이 지난해 4조4000억원대로 늘었고 영업이익도 3000억원대로 성장했다. 하지만 한화와 대림의 동거는 3년 전부터 금이 가기 시작했다. 중간관리자의 임원 승진이 다가오면서 인사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여천NCC는 대림과 한화 출신 간 비율이 부장은 6 대 4, 차장은 8 대 2지만 임원은 5 대 5를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대림 출신 부·차장들이 “한화 출신에 비해 승진이 늦고 숫자가 적다”며 불만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지난 연말에는 이준용 대림 회장과 김승연 한화 회장 간 고소사건으로 번졌다. 최근에는 차장급 3명이 현 경영진과 인근에 있는 한화석유화학 사장을 절도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대림 출신의 한 차장은 “승진을 못하면 직급 정년이 차 옷을 벗어야 할 지 모르는데 지분이 5 대 5라며 승진인사도 같은 비율로 하자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또 대림 출신은 2003년 직원 감축 때 28명이 회사를 나간 반면, 한화 출신은 2명밖에 안 됐다는 불만이다.

한화 측은 “대림 출신 부·차장 승진자는 우리보다 두 배 이상 많은데도 억지를 부린다”며 “경영권을 똑같이 나누기로 했으면 임원도 이 비율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또 “2003년 대림 출신이 많이 나간 것은 한화와 달리 대림이 구조조정을 안한 채 합작했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여천NCC는 대림과 한화 출신 간 갈등이 증폭되면서 2005년 말 이후 인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 출범 당시 이 회사는 대림 출신이 700명, 한화 출신이 300명이었다. 하지만 합작 뒤 명확한 승진인사 원칙을 세우지 못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대림과 한화 출신 직원들은 현재 회식이나 식사도 따로 할 정도다. 다른 쪽 출신 상급자의 업무지시를 받을 때는 문서로 된 작업지시서를 요구하기도 한다. 여천NCC 출범 뒤 새로 채용된 23명의 직원은 양쪽 출신 선배들의 눈치를 보기도 한다. 이렇다 보니 2004년 말 6000억원에 달했던 회사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올해 1분기에는 영업이익이 300억원대로 곤두박질쳤다.

유화업계에서는 “시장 상황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데 대비책은 마련하지 않고 자리 싸움만 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여천NCC의 주력 생산품인 에틸렌이나 프로필렌은 그동안 고유가로 가격이 계속 올랐다. 하지만 중동에서 국내 원가의 30% 비용으로 에틸렌 등을 생산할 수 있는 신공법이 개발돼 위기에 몰렸다. 에틸렌의 최대 수입처인 중국도 자급률을 높여가고 있어 시장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

울산대 박흥석 교수는 “합병 기업은 ‘화학적인 결합’을 해야 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데 5대5의 합작 비율이 이를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정훈 기자

여천NCC에선 무슨 일이

▶감원 때 대림 출신은 28명, 한화는 2명 나가 ‘불공평’ 주장
▶출신 직원 비율은 대림 7 : 한화 3인데 임원은 5 : 5로 하자니 …
▶양사 출신 간 갈등 탓에 3년째 승진인사 못해
▶출신 다른 직원 간에는 회식이나 식사도 같이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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