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이익 강조해야 로비가 먹혀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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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들이 미국에서 로비할 땐 한국이 아니라 미국의 이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통상문제 전문가인 김석한 변호사(사진.미 워싱턴 소재 애킨검프법률회사 매니징 파트너)가 25일(현지시간) 뉴저지주에서 주미 한국상공회의소(KOCHAM.코참) 회원사 대표들을 상대로 '미국서 로비하는 법'에 대해 강연을 했다.

"예컨대 한국 자동차가 미국에서 반덤핑 제소를 당한 경우를 가정해 보자. 이때 미국 관리들을 상대로 한국 경제가 큰 타격을 받는다고 호소해도 별로 먹히지 않는다. 미국의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 차 수출이 막히면 미국 항구에서 하역작업을 하는 근로자들을 비롯해 한국차 딜러와 부품업계 종사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金변호사는 "한국의 가장 성공적 로비 사례는 외환위기 때 클린턴 대통령의 친구인 버넌 조던 변호사를 썼던 일"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金변호사의 이날 강연을 요약한 것이다.

한국에선 아직도 로비 하면 각종 친분과 연줄을 이용해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미국에서는 이슈 위주로 합법적인 로비를 한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정책이 특정 업계에 불리하게 작용할 경우 그 업계는 전문가들을 동원해 법적.경제적 파장을 분석, 그것으로 관리들을 설득하는 것이다. 미국 기업들은 이런 활동을 위해 워싱턴에 수십.수백명씩 직원을 두고 있다. 미국 실정에 어둡고 언어장벽도 높은 한국 기업들이 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곤란하다. 미국에서 영업하면서 필요한데도 로비를 하지 않는다면 앉아서 손해 보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다 로비가 통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반덤핑건의 경우 초기에 덤핑률을 계산하는 단계에서는 로비가 필요치 않다. 다분히 기계적으로 산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단계를 지나 정치적 결정으로 넘어가면 로비에 나서야 한다. 최종 제재 수위를 놓고 미 행정부 안에서 논란이 벌어질 경우 한국 입장을 비교적 잘 이해하는 부처에 다른 부처의 주장을 누를 수 있는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로비할 때는 경험이 많은 법률전문가 등을 찾는 것이 좋지만 그 기업이 자리 잡고 있는 지역 출신의 상.하원의원 등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기업들은 이제 로비 비용을 특수한 것으로 보지 말고 일상적인 기업활동에 필요한 경비로 봐야 한다. 또 로비는 일이 터진 뒤 수습하는 것보다는 장기적 과제로 접근하는 게 효과적이다. 지지세력과 평소 정보를 교환하고 신뢰를 쌓아두면 유사시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북한 핵문제도 로비 대상이 된다고 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인식을 가진 이들은 한국에 없는 것 같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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