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손길로…] 4. 원불교 정상훈 교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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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불교 정상훈(右) 교무가 치매 노인들과 함께 색칠놀이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박정호 기자]

원불교 고창교당 정상훈(62) 교무가 할머니들의 손을 잡고 색칠놀이를 하고 있다. 종이 위에 그려진 아기곰에 예쁜 색을 입혔다. 빨강.파랑.노랑 크레파스로 곰 얼굴을 채워나갔다. 노인들은 완성된 그림이 신기한 듯 손뼉을 치기도 했다.

지난 23일 오후 전북 고창군 '보은의 집' 풍경이다. '보은의 집'은 영세민 치매 노인 40여명이 함께 살아가는 무료 복지시설이다. 방에는 매화.수련.백일홍.수국 등의 꽃이름이 붙어있다. 물리치료실.머리방.목욕탕 등 부대 시설도 깔끔하다.

***어린이집·노인시설 만들어

'보은의 집' 앞에는 '효도의 집'이 있다. '효도의 집'에는 65세 이상의 영세민 노인들이 공동 생활을 하고 있다. 정교무는 복도에서 마주친 노인들에게 한마디씩 말을 건넸다.

"할아버지, 왜 그리 힘이 없어 보이세요. 운동을 하지 않으니까 그렇죠." "할머니 잔디밭에 나가 풀 좀 뽑으세요. 햇볕도 쐬고 그래야 건강하시잖아요."

할머니의 대답이 뜻밖이었다. "목사님, 어디 갔다 오세요." 정교무는 자연스럽다는 표정이다. "교회에 다니셨던 분이거든요. 저를 항상 목사라고 불러요."

'효도의 집' 맞은편에 '어린이집'이 보인다. 공부를 마친 '노랑병아리'들이 '하나 둘'을 외치며 지나갔다. 잔디밭에 있던 노인들이 어린이들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어린이집과 노인시설이 함께 있으니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 같습니다. 외로운 노인들이 손자.손녀를 돌보는 기분이 드는 거죠. 생일날엔 서로 초청해 축하를 해줘요."

'보은의 집''효도의 집''어린이집'은 총 4000평 규모다. 지난 14년간 주민 복지를 위해 노력해온 정교무의 땀이 배어있는 곳이다. 그는 후원자를 모집하고, 교단의 지원을 끌어내고, 공무원을 설득하며 뛰어다녔다.

"종교가 농촌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어린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부모의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으려면 역시 교육이 중요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어린이집을 세웠어요. 그리고 노인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사실 현대사회의 효는 개별 가정의 힘으로 풀 수 없습니다. 지역과 국가 모두 책임감을 느껴야 해요."

그는 종교를 '잘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고리'라고 설명했다. 돈이 있어도 하기 어렵고,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는 걸 하는 게, 즉 서로 베풀며 어울리는 사회를 만드는 게 종교라는 것이다.

***"종교는 富者와 貧者를 연결"

"원불교 교리에 '강자약자진화상여법(强者弱者進化相如法)'이 있습니다. 강자도, 약자도 상대를 통해 더 강해진다는 뜻이죠. 복지사업은 그 뜻을 현실로 옮기는 겁니다."

정교무는 고창에 부임하기 전 임실군 관촌면에서도 비슷한 일을 했다. 궁벽한 농촌마을에 탁아소를 세우고, 노인당을 만들고, 식품공장을 차렸다. 지난 30여년을 복지 분야에 전념해온 것이다.

그는 또한 고창에서 청소년 공부방, 무료 급식소를 운영하고 있다. 몸이 불편한 사람에겐 도시락을 직접 배달해준다. 또 지난해 김제시에 대안중학교를 설립했다. 가정에도, 학교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10대들을 사랑으로 감싸주니 아이들이 달라졌다고 한다.

"종교에서 배운 건 희생과 봉사입니다. 제 업(業)인지도 모르죠. 내년께 더 어려운 오지로 옮겨갈 생각입니다. 새 일을 찾아야죠. 어린이와 노인을 돕는 건 저를 낳아준 부모에 대한, 나아가 사회에 대한 보은이거든요." 063-563-9401.

고창=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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