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랑방>"베른條約"이 두렵다지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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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버나드 쇼는 1950년에,앙드레 지드는 51년에,유진 오닐과딜런 토머스는 53년에,토마스 만은 55년에 각각 세상을 떠났다.60년대에 들어서도 알베르 카뮈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이상60년),어니스트 헤밍웨이(61년),윌리엄 포 크너와 헤르만 헤세(이상 62년).올더스 헉슬리와 장 콕토(이상 63년).서머싯 몸과 T S 엘리엇(이상 65년)등 세계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한 저명한 문인들이 잇따라 별세했다.
사망한지 아직 50년이 안된 이들의 작품을 한국에서 번역.출판하는 경우 출판사들은 그 저작권료를 아무에게도 지급하지 않았으나 내년 7월1일 이후 이들의 작품을 번역.출판하려면 유족등저작권자와의 계약을 거쳐 인세(印稅)등 소정의 저작권료를 지급해야 한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에 따른 회원국으로서의 의무수행을 위해 「베른 조약」에 가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학작품을 비롯한 출판물의 해적판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본 나라는 프랑스였고 그같은 무단복제의 범람에 과감하게 맞선 사람이 『레미제라블』로 유명한 소설가 빅토르 위고였다.그는 프랑스문예가협회를 만들어 저작권 옹호에 적극앞장섰으며,그 조직을 확대해 1878년에는 세계문예가협회를 조직했다.회원들에게 저작권 옹호를 위한 국제적인 조약의 필요성을끈질기게 역설한 끝에 마침내 1886년 탄생한 것이 베른 조약이다. 100여년간 저작권분야의 국제규범으로 통해온 베른 조약가운데 중요한 대목으로 꼽히는 것이 「저작자의 생존중 및 사망후 50년간」으로 정한 「저작권의 보호기간」이다.가맹국의 국내법은 보호기간을 이보다 길게 정할 수는 있어도 더 짧게 규정할수는 없다는 단서조항도 붙어있다.1952년 유네스코에 의해 제네바에서 성립한 세계저작권조약(UCC)이 그 보호기간을 25년으로 정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도 저작자에게 훨씬 유리하다.두 조약에 모두 가입한 나라는 베른 조약을 우선적으로 적용하도록 돼있는 것도 베른 조약의 무게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문화적.경제적으로 뒤떨어져 있는 나라들은 베른 조약을눈엣가시처럼 생각하게 마련이다.가맹하기만 하면 엄청난 저작권료를 지불해야할 뿐더러 온갖 제약에 묶이기 때문이다.그래서 「해적판의 천국」이라는 국제적인 오명(汚名)을 뒤집 어 쓰면서도 짐짓 시치미를 떼고 있는 나라들은 아직도 적지 않다.
한국은 지난 87년 UCC에 가입하면서 비로소 외국인 저작권의 문제를 실감하게 됐지만 UCC만 해도 가입 이후의 출판물에대해서만 저작권을 보호하고 있고 그 이전의 출판물에 대해서는 「불소급 조항」을 적용했던만큼 외국인 저작권의 문제는 강건너 불일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베른 조약은 그리 만만치 않다.가맹하고서도 규약을 어길 경우 온갖 불이익을 당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른 조약 가입을 기정사실화한다면 한국으로선 그 이후 부담해야할 로열티가 가장 큰 문제다.아직은 추산하기조차 어렵지만 복제권 사용료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연간 수백억원대에 이르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런 전망이다.그 대부분이 미국이나 유 럽 여러나라출판물의 아시아지역 계약권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에게 넘어가게 돼 있는 것도 찜찜하고 책값이 15~20% 오르게 돼 있는 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졸속.저질번역이 판을 치고 똑같은 작품이 한꺼번에 수십종씩 쏟아져 나오는등 혼란과 무질서의 온상이었던 번역출판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베른 조약의 가입이 획기적인 전환을이룰 수도 있다.문화.정보교류 차원에서도 질적. 양적으로 높은수준을 유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출판계가 힘을 합쳐 부정적측면을 줄이고 긍정적 측면을 늘려나가는 지혜를 짜내야 할 일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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