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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미로찾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0면

민우는 꿈을 적다 말고 밖을 쳐다보았다.창밖에는 아직 짙은 어둠이 가득했다.꿈을 매일같이 적는 것은 오랜 습관이었다.민우는 학창시절에는 거의 매일같이 일기를 썼으나 정신과 의사가 되면서부터는 그만두었다.정신과를 전공하면서 의식보다 무의식이 우리에게 엄청난 힘을 행사함을 깨달은 후부터는 의식에서 나온 글보다 무의식에서 나온 글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그 후 민우는 일기 대신 꿈일기를 적기 시작했다.꿈일기는 일기를 쓸 필요성을전혀 못느끼게 할만큼 민우의 정신에 큰 도움을 주었다.특히 주미리가 죽은 후 민우가 현실을 크게 일탈하지 않게 도와준 것은민우의 꿈이었다.꿈은 의식의 일방성을 보충하는 보상기능(compensatory function),미래를 보여주는 예시기능(anticipator y function)등이 있기에 민우의 정신이 균형을 잡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민우는 일단 꿈의 뜻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였다.주미리에게 분석을 받을 때는 1주일에 한 두 편 꿈을 한시간 정도 다루면서 꿈의 내용을 연상(associat ion),확충(amplification),분석(analysis),합성(synthesis)하고 했으나 주미리가 죽고 난 다음에는 그냥 꿈에서 느껴진 것을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며일상에 적용했다.그렇게 하다 보니 그것도 꿈을 이해하는 방 법이었다.꿈은 항상 내 안에서 울려나오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렇게깜깜한 가운데 일어나 꿈을 적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꿈은 대개아침에 많이 꾸기에 꿈을 적을 때는 새벽이 많았다.그러나 이 꿈은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하나라도 놓치지 않 을 양으로 쏟아지는 잠을 무릅쓰고 적은 것이었다.바로 초인이 나타났기 때문이다.초인의 꿈을 꾼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비록 꿈속에서 민우의역할은 불분명했지만 초인이 나타났다는 것은 무언가 민우의 정신이나 신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거 나 가능함을 의미한다.꿈에 나타난 내용이 현실과 연관이 없을 때에는 그 꿈은 주관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심리학 이론이 있다.그 꿈은 일상의 삶에 대한 교훈을 내포한 것이 아니라 내면의 삶에 대한 교훈과 앞날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는 것이다.주관적인 해석은 꿈에 나타난 모든 상들을 꿈을 꾼 사람의 정신의 일부가 인격화.물격화한 것으로 본다.민우의 꿈에 나타난 모든 사람들은 민우 정신의 부분이 자율적으로 움직여 기능한 것이다.이 꿈은 민우의 미래에 대한 경고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을 갖기를 가르쳐주는 듯했다.어검술과 기수식이란 말은 무협지 용어다.민우는 국민학교 때부터 와룡생이 지은 『소년 군협지』에 흠뻑 빠졌었다.『소년 군협지』는 그림까지 군데군데 그려져 있어 민우는 한동안 그 책 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아마도 내성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민우의 청소년 시절을 사로잡았던 것을 들라면 『소년 군협지』와 『사운드 오브 뮤직』 둘일 것이다.민우는 문자 그대로 그 둘이주는 감동을 오랫동안 되씹곤 했다.『소년 군협 지』는 민우에게강직한 꿈과 희망을,『사운드 오브 뮤직』은 낭만적인 아름다움과여성다움,민족주의를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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