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믿을 기상예보 왜 그런가 했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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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층 기상관측에 사용되는 라디오존데의 풍선과 측정센서를 기상청 관측자들이 띄우고 있다(사진 위). 이 기구는 지름 2m의 풍선에 기온·기압·습도를 측정하는 센서를 부착하고 있으며 하루 두 차례 공중에서 기상 상태를 측정한 뒤 무선으로 지상에 송신한다. 아래 사진은 장비업체가 입찰 신청할 때 제출한 장비(오른쪽)와 실제로 납품한 장비(왼쪽). [사진제공=감사원]

기상청의 날씨 예보가 자주 틀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성능이 나쁜 엉터리 관측 장비를 구매해서 써 온 것이다. 감사원은 1일 “기상청이 2006년 잇따라 규정을 어기며 성능 미달인 부실장비를 구입해 기상 관측을 실시했으며, 이로 인해 지난해 기상 오보율이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기상청 결산감사에서 이런 문제점을 적발했다.

감사 결과 기상청은 2006년 11억4120만원을 들여 높은 고도의 일기 상황을 관측하는 장비인 ‘GPS 라디오존데’를 구입했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정확한 예보를 위해 각 회원국에 WMO가 제시한 기준에 맞는 라디오존데를 구매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부득이 자체 관측실험을 할 때에도 최소 40회 이상 실험을 의무화하고 있다. 라디오존데는 WMO 회원국이 매일 세계 표준시로 정오와 자정(한국시간 오전 9시와 오후 9시) 두 차례씩 띄워 기상정보를 수집한다. 수집한 기상정보는 회원국 간에 공유한다.

기상청은 그러나 장비를 구입하면서 입찰 신청을 한 제품에 대해 자체 실험을 13차례만 한 것으로 드러났다. 반드시 해야 하는 비 오는 날 실험은 아예 생략했다. 기상청은 자체 실험 결과를 가지고 A사가 수입한 독일 제품을 기준이 충족된 제품으로 인정, A사에 입찰 참가 자격을 줬다. 감사원은 “이 모델은 이미 WMO가 2005년 ‘습도 오차가 기준 관측기와 30% 차이가 난다’며 성능 미달 판정을 내린 제품이었다”고 설명했다.

A사는 여기서 한 술 더 떠 입찰할 때는 전혀 다른 제품을 제출했다. 비교관측 실험도 안 했고 WMO 인증도 받지 못한 제품이었다. 기상청은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이 제품을 구입했다.

부실 장비 구매의 부작용은 곧바로 나타났다. 이 장비를 부착한 풍선을 띄우기 시작한 2007년 부실 관측 횟수가 2006년(147회)의 2.4배인 352회로 급증했다. 감사 결과 습도 등 자료 이상 건수는 2006년 3회에서 49회로, 수신 불량은 23회에서 87회로 각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원은 2006년 당시 라디오존데 구입을 주도한 기상청 담당 사무관을 해임하고 다른 직원 2명을 징계하라고 기상청장에게 요구했다. 현재 기상청의 전반적인 납품 비리를 수사 중인 검찰에도 감사 결과를 통보했다. 또 WMO 기준에 맞게 비교 관측 실험을 다시 실시해 성능이 인증된 제품을 구입하도록 하고 A사에 대해서는 손해배상과 입찰 참가 제한 등의 제재를 취하도록 했다.

기상청 김승배 통보관은 “구매 관계자로서는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거대한 기상 현상을 측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기상 오보의 모든 원인이 이번에 문제가 된 부실 장비 탓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해명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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