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17억원 주고 공천 딴 거래’ 판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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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검찰이 1일 친박연대 양정례(31) 당선인의 어머니 김순애(58)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당의 비례대표 공천헌금 관행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처음이다. 검찰은 김씨가 당에 낸 17억원 모두를 공천 대가로 판단했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양씨의 경우 모든 정황상 대가성이 명백하며 입증할 정황증거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김씨는 빌려준 돈이라고 주장하지만 차용증은 처음부터 수사에 대비해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지난달 25일 어머니 김씨와 양씨가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를 만나 공천을 확정지은 행위를 ‘돈을 주고 공천을 딴 거래’로 보고 있다. 검찰이 이 돈을 순수한 당비 헌금이 아닌 거래의 대가로 보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김씨가 공천이 확정된 뒤 서청원 대표와 만남을 주선한 친박연대 손상윤(42) 후보와 친박 외곽단체 간부 이모(58)씨에게 500만원씩 사례비를 준 점이다. 특별당비라면 굳이 중개인에게 돈을 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씨가 보유 주식까지 팔며 17억원을 급하게 마련한 점도 거래의 증거로 보고 있다. 검찰은 자금 추적을 통해 김씨가 공천신청 직전에 보유하던 주식까지 처분해 자금을 준비한 정황을 포착했다. 보유 자산까지 팔아 마련한 급전으로 당에 자금을 빌려줬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씨가 자녀들의 비례대표 공천을 받기 위해 여러 통로를 통해 접근한 정황도 확인됐다.

김씨를 서청원 대표에게 소개한 이씨는 검찰에서 “김씨가 서 대표를 만나기 전 ‘공천 대가를 제공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씨는 당초 이씨를 통해 자유선진당 측에 아들(38)의 비례대표 공천 이력서를 냈으나 실패하자 친박연대에 딸의 공천을 신청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양씨의 이력서에 적힌 박사모 여성회장 경력은 허위이며, 건풍복지회 실장과 새시대새물결 여성청년간사 직함도 이들 단체의 이사장, 공동의장인 어머니 김씨가 만들어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김씨에 대한 구속영장에 딸 양씨를 공범으로 명시해 함께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양씨도 어머니가 당에 돈을 내고 자신의 공천을 딴 과정을 충분히 알았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양씨가 어머니와 함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돼 벌금 100만원 이상을 확정받을 경우 당선은 무효가 된다. 하지만 양씨가 의원 직을 자진 사퇴할 경우 기소유예로 사법처리를 면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모녀 모두를 사법처리하는 것은 검찰로서도 부담”이라고 밝혔다.

양씨가 사퇴하면 친박연대 비례대표 9번 김혜선 친박연대 여성국장이 의원 직을 승계하게 된다.

법원이 2일 영장실질심사를 거쳐 김씨에 대한 영장을 발부하면 서청원 대표에 대한 수사 속도도 빨라질 전망이다. 검찰은 서 대표가 김씨에게 딸의 공천 청탁을 받고 비례대표 1번을 내준 만큼 공천 거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서 대표를 조만간 소환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언·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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