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委 특감 배경]

중앙일보

입력

대통령 권한대행인 고 건(高 建) 국무총리가 20일 대통령 직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일부 위원과 직원들의 '탄핵규탄 시국선언‘ 발표에 대해 감사원 특별감사를 요구한 것은 17대 총선을 앞두고 공직자의 중립성을 확립하려는 차원의 조치로 해석된다.

4.15 총선을 목전에 두고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이같은 집단 '시국선언’은 국가공무원법의 공무원 집단행위와 정치적 행위 금지조항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으로 해석될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고 대행은 이번 총선을 유례없는 '깨끗한 선거‘로 관리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천명하면서 공직사회에 '중립’을 끊임없이 지시해왔기 때문에, 이에 반기를 드는 듯한 집단행동에 대해 하루라도 조치를 늦출수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고 대행이 이날 오전 전윤철(田允喆) 감사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특별감사를 요청하고, 총리실 관계자들에게도 “대단히 빨리 신속하게 (감사를) 해야한다. 주말에라도 착수했으면 좋겠다”라고 재촉한 것이 이같은 상황을 뒷받침한다.

정부가 감사원에 공공연하게 감사를 요구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현행 감사원법은 국무총리만 감사원에 감사를 요구할 수 있을 뿐 대통령의 개입을 견제하고 있다. 감사원이 대통령 소속기구지만 직무상 독립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고 대행이 이같은 집단행동을 강한 어조로 경고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전례가 드문 감사원 감사요구를 선택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기에는 대통령 소속기관이라는 의문사진상규명위의 '위상‘과 국회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는 상임,비상임위원의 '신분’이 고려됐다는게 대체적 분석이다.

행정자치부나 국무조정실 감찰반도 '시국선언‘ 가담자를 직무감찰할 권한은 있지만 이 보다는 대통령 소속기관으로서 '동급’이면서 정부부처보다 더 강한 감사력을 행사해온 감사원이 나서는게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국조실 고위관계자는 “위상면에서 봤을 때 국조실이나 행자부가 문제의 위법성을 철저히 보기는 어렵다”면서 “감사원 감사는 정부부처 감사와는 달리 자료 강제 제출권에서 제한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같은 행정부 '울타리‘내에서 감사하는 것보다는 행정기관이지만 독립기관으로 인식되는 감사원이 나서는게 공정성 시비가 적고, 공직사회 파급 효과가 크며, 감사결과에 대한 국민 설득도 용이하리라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짐작된다.

이밖에 '시국선언’ 관련자에 대해 중징계가 따르더라도 감사원이 나서면 고 대행으로서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임명한 고위직 인사에 대해 직접 인사처분을 내리는 부담을 더는 측면이 있다.

참여정부의 첫 감사원장으로 임명된 전윤철 원장의 의욕과 추진력도 이번 조사를 감사원이 맡는데 함께 고려됐다고 국조실 관계자가 귀띔했다.

감사원은 즉각 이날 오후 의문사진상규명위에 감사인력을 투입했다.

감사원 관계자는 “대부분 준 공무원 신분인 의문사진상규명위 '시국선언 ‘발표자의 행위가 공무원 집단행위 금지조항과 정치행위 금지규정에 해당하는지를 집중 검토한다”고 말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의문사진상규명 특별법’ 38조가 '공무원이 아닌 위원회 위원 또는 직원은 형법, 기타 법률에 따른 벌칙의 적용에 있어서는 공무원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들이 처벌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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