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함께>"머리에도 표정이 있다" 이은정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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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길을 스쳐가는 사람의 상한 머릿결이 지르는 비명을 듣는 사람이은정(52.사진)씨는 스스로 「헤어디자이너」이기를 고집한다.
특별히 영어를 좋아해서 흔히 불리는 미용사란 호칭을 거부하는것이 아니다.스물도 안돼 미용업계에 발을 디딘 이래 미국.프랑스에서의 연수,조선호텔등 유명미용실 근무,미용박람회 심사위원장에 이르도록 자신이 걸어 온 35년 외길이 단순 히 다른 이들의 머리카락만 매만진 시간이 아니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머리에도 표정이 있다』(김영사刊).자연히 할 말이 많을 수밖에 없다.
실제 그녀는 본업인 머리손질 외에 연구모임을 이끌거나 문화센터.YWCA등에서의 미용사.일반주부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등으로더 분주한 사람이다.미용계에서의 위치가 이은정씨를 자기 일에만신경쓰도록 하지도 않지만 제대로 손질 안된 머 리를 보면 참지못하는 스스로의 성격탓이기도 하다.
『일반인들,특히 머리에 무관심한 남성들을 염두에 두고 썼어요.』 李씨는 사람의 인상에서 머리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모를 뿐아니라 머리카락을 마구 다루는 우리의 낮은 인식이 안타깝단다.
서울올림픽 직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의 헤어케어 관련 제품회사 관계자들이 우리의 머리손질 상태를 본뒤 『한국은 황 금시장』이란 평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미용인 대상의 강좌를 열어 분발을 촉구하기도 했던 李씨다.머리손질은 단순한 멋내기 이상이라는이은정씨는 머리를 통해 사물을 본다.조선호텔미용실 등 자신의 근무처를 통해 만났던 수많은 유명인들도 그렇고 TV에 출연한 정치인.연예인도 머리가 우선 눈에 들어 온단다.자신의 책에서도김영삼(金泳三)대통령,패티김 등의 머리를 평하고 손질법을 제시했을 정도다.
『제 책에서 언급한 인사들에겐 양해를 구하는 편지를 냈는데 그중엔 고맙다는 답장을 보내온 분도 있지요.』 그녀는 이런 자신의 글을 헤어칼럼이라고 규정한다.실제 책의 적지 않은 부분이체격.복장은 물론 직업에 어울릴 머리모양에 대한 조언과 샴푸선택법,머리 말리는 법등 각종 사보(社報)에도 실렸을 만큼의 실제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론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미용인중 한사람이 일터에서,가정에서,강의실에서 얻은 산 경험이 녹아 있어 한국 미용문화의 개척사라고도 할 수 있다.
미용인 지망자를 위한 전문서를 쓰기 시작했다는 이씨.자신의 일이 좋아 꾸준히 연구 노력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나이를 잊은 「프로」의 향기가 났다.
金成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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