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외교관 ‘세일즈 코리아’ 머리 맞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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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左>이 23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초청 만찬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김경빈 기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첫 재외공관장회의가 23일 시작됐다. 28일까지 6일간의 일정으로 열리는 공관장회의에는 114명의 공관장이 참석했다. 공관장회의란 한국을 대표해 세계 각국에 파견된 대사(일부 대표부대사 포함)들이 1년에 한 번씩 모여 정부의 정책 등을 전달받고 논의하는 자리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공관장회의는 예년과 달랐다. 회의에 기업인들이 참석해 외교관들과 일대일 상담을 하는 일정까지 마련됐다. 회의의 초점도 ‘경제 살리기’였다.

참석자들 가운데 가장 바쁜 공관장들은 자원·에너지 부국에 주재하는 59명의 대사였다. 회의 첫날인 23일 오후 한승수 총리는 이들 에너지·자원 거점 공관장들만 모아 별도 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는 외교부 외에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국토해양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관계자와 경제 4단체, 석유공사, 광업진흥공사 관계자들과 민간 기업인들이 참석했다. 당초 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방안을 추진하다 막판에 총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석유공사와 경남기업 등의 사례 발표가 인상적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외교부 관계자는 “현지 대사들과 관계 부처·기업인이 한자리에 모여 자원외교 전략을 짜내는 브레인스토밍의 자리였다”고 말했다.

에너지 거점 공관장들은 또 별도의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원·에너지 외교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호소했다. 김일수 주카자흐스탄 대사는 “세계의 에너지 시장은 몇몇 메이저 업체가 독과점하고 있다”며 “한국의 석유공사는 자본력이 엑손모빌의 10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만큼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김영목 주이란 대사는 “대부분의 자원부국이 한국의 경쟁력 있는 정보기술(IT), 제조업 분야의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를 무기로 자원외교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공관장회의 둘째 날인 24일에는 외교관과 기업인의 만남이 예정돼 있다. 해외 진출과 투자를 희망하는 기업 관계자의 문의에 대해 현지 사정에 정통한 공관장들이 일대일로 조언을 해 주는 상담회가 오전 9시~오후 5시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공관장회의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104개 업체에서 공관장 한 명당 평균 5건꼴인 총 508건의 상담 신청이 들어왔다”며 “상담회를 기획한 우리도 기업인들이 이렇게 관심을 보일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석유자원 부국인 카자흐스탄 주재 김일수 대사가 가장 많은 상담 신청을 받았다. 현지 정보가 상대적으로 적은 중소업체의 참여가 많았지만 포스코건설·대우조선·기아·삼성SDS 등 대기업도 상담을 신청했다.

공관장 회의의 진행 방식도 달라졌다. 권종락 외교부 1차관은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요소를 줄이고 실질적인 토론 위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주재하는 오·만찬 행사도 인사말이나 연설을 최소화하고 자유토론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 좌석 배치도 공관의 서열에 따르던 것을 올해부터는 자유 좌석제로 하고, 필요한 경우 주재국명에 따른 가나다순으로 배치해 권위주의적 요소를 없앴다고 한다. 

글=예영준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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